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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말레이 ‘북한이 배후’ 사실상 공식화…양국 관계 살얼음

등록 2017-02-22 19:28수정 2017-02-22 22:14

도주 4명 송환·현지 2명 출석 요구
북, 순순히 요구 응할 가능성 없어
출석 거부 땐 추방 절차 밟을 수도
북한 배후 결론 땐 외교 마찰 불보듯
아웅산테러 사건 땐 미얀마-북 단교
22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경찰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할릿 아부 바카르 말레이시아 경찰청장이 여성 용의자들의 범행 수법을 설명하며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문지르고 있다. 쿠알라룸푸르/EPA 연합뉴스
22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경찰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할릿 아부 바카르 말레이시아 경찰청장이 여성 용의자들의 범행 수법을 설명하며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문지르고 있다. 쿠알라룸푸르/EPA 연합뉴스
말레이시아 경찰 당국이 22일 현지 북한 대사관 직원을 김정남 피살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한 것은 이번 사건의 배후에 북한 당국이 있다는 판단을 사실상 공식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수사 초기 외교관계를 고려해 조심스런 행보를 보여온 말레이시아 당국이 태도를 바꾼 셈이어서, 두 나라 관계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게 됐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이날 현지 북한 대사관에 △도주한 용의자 4명 송환 △현광성(대사관 2등 서기관)·김욱일(고려항공 직원) 출석 등을 공식 요청했다. 하지만 북쪽이 이런 요청에 순순히 응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북한 대사관 쪽은 이날 오후 성명을 내어 “사건 발생 열흘이 지났지만 말레이 경찰은 체포 용의자들로부터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며, 오히려 북한 국적자인 리정철 등 체포된 용의자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말레이시아 경찰 당국은 “용의자들을 출석시키지 않으면, 체포영장을 발부받겠다”고 경고했지만, 이 또한 쉽지 않아 보인다. 현광송은 현직 외교관 신분이어서 면책특권이 있다. 따라서 이들이 끝내 경찰 출석을 거부하면, 체포가 아닌 추방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북한이 강력 반발할 테고, 두 나라 간 외교 갈등은 한층 격화할 전망이다.

현지 언론에선 벌써부터 “북한과 맺은 비자 면제 협정을 파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1973년 국교를 수립한 두 나라는 2003년 양국 수도에 대사관을 설치했고, 2009년 비자면제 협정을 맺었다. <뉴스트레이츠타임스>는 22일 샤흐리만 록맨 말레이시아전략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의 말을 따 “북한과 비자 면제 협정 체결로 치러야 하는 비용에 견줘 이익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록맨 연구원은 “북한과 연간 무역 규모는 말레이시아 대외무역 총액의 0.002%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북한과 교역을 중단해도 타격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김정남 피살의 배후가 북한 당국이라고 최종 결론을 내린다면, 어떤 형태로든 두 나라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 최악의 경우 1983년 10월 미얀마(당시 버마) 수도 양곤에서 벌어진 아웅산 국립묘지 테러 사건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시 미얀마 당국은 북한 소행임이 명백해지자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북한과 국교를 단절했다. 코스타리카 등 3개국도 미얀마 정부의 결정에 동조해 북한과 국교를 끊었다. 말레이시아 정부의 결정에 따라 동남아 각국이 공동 보조를 취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번 사건은) 국제사회가 북한 정권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특히 북한의 주 외교무대라고 할 수 있는 동남아 지역에서 북한의 입지가 좁아지며, 외교적 고립이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인환 김지은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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