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한 윤병세(왼쪽) 외교부 장관과 왕이(오른쪽) 중국 외교부장이 악수하고 있다. 뮌헨/신화 연합뉴스
독일 본과 뮌헨에서 열린 주요 20국(G20) 외교장관회의와 안보회의 계기에 분주하게 진행된 한국·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동북아 주요국의 양자 외교장관 회담의 결과는 동북아 정세가 얼마나 위태로운 지경으로 내몰리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는 물론 양자 차원의 외교·안보 현안을 두고도 공통의 기반을 넓히기보다 오히려 이견을 증폭시켰다. 특히 대통령 탄핵 위기에 몰린 박근혜 정부는 북한은 물론 중·러·일 등 주변국과 ‘전방위적 외교 갈등’이라는 외교 전략 부재의 난맥상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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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러, 한국의 군사위기 고조 조처 비판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 문제를 두고 또다시 충돌했다. 윤 장관과 왕 부장은 18일(현지시각) 독일에서 열린 ‘뮌헨 안보회의’ 계기에 45분간 진행한 양자 외교장관회담에서, “왕 부장은 기존 중국 정부의 사드 배치 반대 입장을 재차 언급했으며, 이에 대해 윤 장관은 사드 배치가 북한의 위협에 대한 자위적 방어 조처라는 점을 재확인했다”고 한국 외교부가 19일 밝혔다. 아울러 왕 부장은 윤 장관한테 ‘사드 배치를 서두르지 말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회담에 배석한 한국 외교부 당국자가 전했다.
윤 장관은 중국 쪽의 이른바 ‘사드 보복 조처’와 관련해 “강한 우려를 표명하며 이는 양국 관계의 장기 발전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 뒤 적절한 조처를 취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국 외교부 당국자가 전했다. 이에 대해 왕 부장은 ‘중국 인민의 정서와 관련된 부분으로 중국 정부가 관련된 건 아니다’라는 취지의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18일 뮌헨에서 윤병세 장관과 30분간 진행한 회담에서 “(3월 초 시작될 키리졸브) 한-미 연합군사연습 때 (핵무기 운용이 가능한) 미국 전략자산을 (한반도와 그 주변에) 배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고 배석한 한국 외교부 당국자가 19일 전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주한미군 사드 체계 배치’가 미국의 글로벌 미사일방어(MD) 체계의 일환이라는 맥락에서 우려를 표명했다고 이 당국자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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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북한 문제’ 두고 큰 시각차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17일 뮌헨에서 취임 뒤 처음으로 왕이 외교부장을 만난 자리에서 “불안정을 야기하는 북한의 행동을 완화하기 위해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을 중국에 촉구했다”고 미국 국무부 마크 토너 대변인 대행이 이날 밝혔다. 이는 북한 핵·미사일 프로그램 개발에 제동을 걸기 위해 중국의 영향력을 행사하라고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토너 대변인 대행이 미-중 외교장관 회담 결과를 전하며 북한 문제에 이어 “무역·투자에서 평평한 운동장을 만들 필요성을 논의했다”는 두 가지 소식만을 언급한 점에 견줘보면, 미국 쪽이 북한 문제에 상당한 비중을 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실제로 미국이 중국 압박을 위해 북한과 거래하지 않는 중국 기업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실행할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이에 비해 왕이 부장은 이날 안보회의 기조연설 뒤 기자회견에서 “미-북 양국이 가장 직접적인 당사국이므로 정치적 결단을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내놓을 필요가 있다”며 “한반도의 최대 이웃 국가로서 중국은 그 가운데서 중재하고 적극 역할을 발휘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의 ‘중국 역할 및 책임론’에 대한 우회적인 반박으로 풀이된다. 왕이 부장은 “중국은 아직 대화 복귀의 기회가 있으며 평화는 여전히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각국은 형세를 긴장·격화시킬 수 있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말 것을, 또 담판을 재개할 수 있는 돌파구를 함께 찾아내 각국이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협상 테이블에 올 수 있기를 호소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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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외무상, 부산 소녀상 철거 요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17일 윤 장관과 회담 뒤 취재진한테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윤 장관한테 강하게 요구했다고 밝혔다고 <도쿄신문> 등 일본 언론이 18일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부산 소녀상 문제에 반발해 일시 귀국한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대사의 귀임 시기는 ‘철거를 위한 한국 쪽의 구체적 행동’을 조건으로 판단하기로 했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윤 장관은 “가능한 한 최대한 노력을 할 것”이라고 했다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12·28 합의 재협상과 소녀상 철거 반대 여론이 압도적인 한국 상황을 고려할 때 현실성이 없다. 한-일 갈등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제훈 기자, 워싱턴 베이징/이용인 김외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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