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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북에 ‘사후통보’냐 ‘사전탐문’이냐…기권결정 날짜가 열쇠

등록 2016-10-19 22:49수정 2016-10-20 08:12

“11월16일” vs “11월20일”
문제 불거진 ‘북에 확인해보자’
회고록에 11월18일 회의로 나와

회고록서 실마리 찾아보니
16일 노대통령 주재 비공식회의
그날밤 송민순 ‘찬성표결 호소문’
전날 ‘기권’방침 그대로였다는 뜻
18일 회의 “이미 결정된 사항을…”
정치권을 격한 공방으로 몰아넣은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에 담긴 2007년 11월 유엔 북한인권결의안(결의안) 표결 방침 결정 전말을 파악하자면 ‘답’을 찾아야 할 질문이 있다. 핵심은 기권 방침 결정일이 11월16일인지, 11월20일인지다. 이 날짜에 따라 북한에 ‘결정 전 탐문’을 했는지 ‘결정 뒤 통보’를 했는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실’을 짜맞추고 맥락을 더듬어 ‘진실’에 다가서려면 추가 질문이 불가피하다. 첫째, 11월16일 노무현 대통령 주재 회의 뒤, 왜 대통령 주재 회의가 다시 열리지 않았나? 둘째, 11월20일 노 대통령과 백종천 안보실장, 송민순 외교장관이 나눈 ‘대화’의 성격은 뭔지다.

■ 11월16일 노 대통령의 ‘지침’은? 방침 결정 과정에서 유일한 공식회의가 11월15일 열렸다. 백종천 실장 주재 안보정책조정회의 뒤 ‘외교장관 찬성 의견’을 덧붙여 ‘다수 의견 기권’이라고 대통령한테 보고했다. 11월16일 오후 청와대 관저에서 노 대통령 주재로 비공식회의가 열렸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의 면담 요청이 계기가 됐다. 마침 관저에 와 있던 송 장관과 주무 고위 당국자인 백 실장이 참석했고,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도 불려들어왔다.

■ 송민순의 ‘막판 뒤집기’ 노력 송 장관은 11월16일 밤, 대통령한테 찬성 표결을 청하는 “마지막 호소문”을 썼다. 이날 회의에서 노 대통령이 전날 안보정책조정회의의 ‘다수 의견’을 뒤집지 않았다는 뜻이다.

11월18일 청와대 서별관 회의와 관련해, 회고록엔 “노 대통령은, (문재인) 비서실장이 다시 회의를 열어 의논해보라고 지시한 것”이라고 돼 있다. ‘표결 방침 재론 회의’라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왜 이미 결정된 사항을 자꾸 문제 삼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는 회고록 내용이 시사하듯, ‘대통령이 16일 기권 방침을 결정했는데 왜 자꾸 따지냐’는 반응을 보였다.

■ 대통령 주재 회의는 왜 다시 열리지 않았을까? 11월16일 대통령 주재 회의 뒤 결의안 표결 방침과 관련해 어떤 공식 회의도 다시 소집되지 않았다. 11월18일은 공식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는 비공식 회의였다. ‘11월16일 기권 방침 결정’ 주장을 뒷받침하는 ‘정황 증거’다. 참여정부 고위 관계자는 19일 “송 장관 주장대로 11월16일 노 대통령이 ‘기권’을 결정하지 않고 재론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면, 대통령 주재 회의가 다시 소집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 11월20일 노 대통령 숙소 ‘대화’의 성격 11월20일, 아세안+3 정상회의가 열린 싱가포르 숙소에서 노 대통령은 백 실장과 송 장관의 보고를 듣고는 “그냥 기권으로 갑시다”(회고록 452쪽)라고 밝혔다. 송 전 장관은, 이 발언을 ‘기권 방침 최종 결정’으로 판단한다. “20일 저녁 늦게 송 장관과 백 실장이 대북결의안에 대해 보고해 노 대통령이 기권 방침을 결정했다”는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의 11월21일 브리핑은,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 증거’다.

‘11월16일 기권 방침이 결정됐다’는 이들은 11월20일 노 대통령의 발언을 다르게 ‘해석’한다. ‘기권 방침 재확인’이자 ‘송 장관 달래기’라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11월20일 “그냥 기권으로 갑시다”라고 ‘지시’한 뒤 “송 장관, 그렇다고 사표 낼 생각은 하지 마세요”(회고록 542쪽)라고 덧붙였다. 이 발언은, 당시 송 장관이 대통령한테 ‘찬성 표결하고 저를 경질하시면 북한에도 면이 서지 않겠습니까’라는 취지로 찬성 표결을 호소한 사연이 배경에 깔려 있다.

■ 엇갈리는 ‘해석’ 참여정부는 11월21일 결의안에 기권했다. 당시 주요 일간지는 예외없이 이 소식을 1면에 다루지 않았다. 기권 자체가 심각한 논란거리가 아니었던 셈이다.

‘기권파’는 참여정부 방침이 11월16일 결정됐다고 판단한다. 반면 최후의 순간까지 노 대통령의 마음을 찬성 쪽으로 돌리려 애쓴 송 장관한테는 ‘11월20일 노 대통령의 발언’이 ‘최종 결정’이다. 11월18일 회의에서 ‘북한에 확인해보자’고 했다는 회고록 내용(‘사실’ 여부를 두고 아직 다툼이 있다)도 같은 맥락에서 ‘기권파’에겐 ‘결정 뒤 통보’, 송 장관한테는 ‘사전 탐문’이 되는 셈이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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