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15분 전 “일단 취소”…취재진 항의에 “예정대로”
미국 ‘양국 대선 영향’ 재촉에 설명회 일정 등 어그러져
국방부가 사드 배치 지역으로 경북 성주가 확정됐다고 공식 발표한 직후인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컨벤션센터에서 ‘사드 성주 배치 반대 범국민비상대책위원회’의 이재복 위원장이 ‘사드 성주 배치 결사반대’라고 쓴 혈서를 들고 항의하고 있다. 그 옆은 황인무 국방부 차관(넥타이 맨 이).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정부의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 지역 공식 발표를 10여분 앞둔 13일 오후 2시45분께, 국방부 브리핑룸 곳곳에서 고성이 터져나왔다. “15시 발표는 일단 취소”라는 국방부 관계자의 느닷없는 통보에, 기자들이 “연기냐 취소냐”고 따져묻고 항의하느라 난장판이 됐다. 소동 8분 만에 다시 애초 계획대로 발표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사드 배치와 관련해 내내 쫓기듯 허둥대온 한국 정부의 졸속 행태를 다시 한번 확인해준 해프닝이었다.
사드 배치 결정 과정은 시작부터 끝까지 혼선의 연속이다. 무엇보다 북한의 핵·미사일을 명분으로 한 미국의 사드 배치 요구에 끌려다닌 결과로 보인다.
한반도 사드 배치 필요성을 2014년 6월 커티스 스캐퍼로티 당시 한·미연합사령관이 처음으로 거론한 뒤 올 초까지 한국 정부의 공식 견해는 ‘3노(No)’였다. 한반도 사드 배치에 관한 “요청도, 협의도, 결정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올초 북한의 4차 핵실험 일주일 뒤인 1월13일 박근혜 대통령이 새해 대국민담화·기자회견에서 사드 배치 검토를 공식 거론했다. 결국 북한의 로켓 발사 당일인 2월7일 한국과 미국 정부는 ‘주한미군 사드 배치 공식 협의’를 선언했지만,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5개월 만에 사드 배치 지역을 확정하리라 내다본 이들은 정부 안팎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애초 절대 다수의 관측은, 아무리 일러도 10월 열리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사드 배치 지역이 결정되리라는 정도였다.
이처럼 서둘러 사드 배치를 추진하면서 정부의 준비 부족이 그대로 드러났다. 정부는 8일 “사드를 국내에 배치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하면서도, 정작 배치 지역은 “수 주 안에” 발표하겠다고 미뤄둬 ‘졸속 혐의’를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애초 국방부는 사드 배치 결정과 함께 지역도 발표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드 배치 결정 발표를 서두르느라 이미 단수로 결정해 관련 내부 절차를 밟고 있던 배치 지역 발표는 빼놓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정부의 이런 어수선한 행보는 논란에 기름을 끼얹었다. 사드 배치 지역을 둘러싼 숱한 억측, 경기 평택·오산, 경북 칠곡, 충북 음성, 전북 군산, 경남 양산 등 후보지로 거론된 지역주민들의 거센 반발이 터져나왔다. 사드 배치 지역으로 경북 성주가 기정사실화된 상황에서 정부와 군 당국이 혼란을 방치한다는 비판도 쏟아졌다. 국방부는 “한·미 실무조사단의 보고서 작성이 완료되지 않았다”며 비공개 방침을 강조했지만, 결국 ‘사드 배치 결정 수 주 안’이 아니라 닷새 만에 배치 지역을 공식 발표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이 때문에 배치 지역 발표 전에 주민들을 상대로 설명회를 열려던 국방부 계획도 어그러졌다. 주민설명회는 발표 당일에야 주먹구구식으로 추진됐다. 이날 정부는 황인무 국방부 차관과 국무조정실·행정자치부·합동참모본부 당국자를 성주로 보내 사드 배치 설명회를 열 예정이었다. 하지만 성주군의 김항곤 군수와 성주군의회 배재만 의장이 상경해 국방부를 항의방문하기로 하자 성주 방문 계획을 취소했다. 정부는 공식 발표 시간을 일단 미뤄서라도 주민을 먼저 만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류제승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은 “성주에서 올라오고 있고 오후 4시쯤 도착하는데 이 발표를 하게 되면 송구스럽지 않냐는 의견이 있어 혼선을 빚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주민설명회는 공식 발표 이후에야 이뤄졌다. 정부의 졸속 행보는 미국의 재촉에 끌려다닌 탓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는 올해 연말까지 사드 배치를 확정하지 못하면, 사드 배치가 난관에 봉착하리라고 판단했으리라는 관측이 많다. 올 연말 미국 대선이 치러지는 데다 내년 초면 한국에서도 대선 정국이 본격화해 사드 배치 여부가 뜨거운 정치 쟁점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관련 영상] 김종인과 서청원, ‘올드보이 딜레마’/ 더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