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수용은 왜 냉대받지 않았을까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한 리수용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일행이 2일 오후 사흘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갔다. 1일 오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면담한 게 방중 일정의 핵심이다. <조선중앙통신>은 2일 관련 보도에서 시 주석과 리 부위원장의 대화가 “친선적인 분위기”에서 이뤄졌다고 전했다. 36년 만의 노동당대회 결과를 설명하러 온 북쪽 대표단을 중국 쪽이 ‘환대’했음을 알 수 있다.
북·중 관계를 “강화·발전시키겠다”(김정은 위원장의 구두친서)거나 “고도로 중시한다”(시 주석)는 덕담이 오갔지만, 분위기가 뜨겁지는 않다. 미묘한 긴장과 ‘생략’이 있다. 중국 <신화통신>은 시 주석을 만난 리 부위원장이 (김정은 위원장을 대리해) “새로운 병진노선은 추호도 변함이 없다”고 밝힌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다. ‘새로운 병진노선’은, 김정은 위원장의 당대회 사업총화 보고에 따라 “조선노동당의 항구적 전략노선”으로 결정된 ‘경제·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뜻한다. 반면 <조선중앙통신>은 시 주석이 리 부위원장한테 “(한)반도 문제의 입장은 일관되고 명확하다”며 ‘북핵’ 반대 뜻을 거듭 밝히고, 관련 당사국의 “냉정과 절제, 소통과 대화”를 강조한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다. 북·중 양국 모두 면담의 핵심 내용을 자기 입맛에 맞게 편집해 보도한 셈이다. 형식논리 측면에서 북쪽의 병진노선과 중국의 ‘한반도 비핵화’는 정면 충돌해, 절충의 여지가 없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관련 기사를 2일치 3면 하단에 작게 처리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구두친서 내용이 언급된 기사라 관례대로라면 1면에 비중있게 다룰 사안이다.
시, 웃었지만 20분만 할애
양국언론도 민감발언 보도 피해 북과 관계 단절하지도
병진노선 묵인하지도 않는 방식
“중-조 대립 함정 피하기” 분석 지난달 방한 다이빙궈 발언도 시사점
“북 당대회…의미있는 변화” 사정이 이런데도 <신화통신>이 공개한 리 부위원장 접견 사진 속의 시 주석은 웃고 있다. 다만 시 주석은 접견에 20분 남짓만 할애했다. 리 부위원장 일행을 태운 승용차가 인민대회당에 들어갔다 나오는 데 28분 걸렸다. 속내를 털어놓는 깊은 대화가 아닌 의전적 만남이었음을 방증한다. 시 주석의 ‘웃음’과 ‘20분 남짓한 짧은 만남’의 맥락은, 지난달 중순 한국을 방문한 다이빙궈 전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의 발언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다이빙궈 전 위원은 방한 기간 비공개 만찬에서 “한국은 조선(북한)의 7차 당대회의 의미를 너무 가볍게 취급하고 깊은 분석을 하려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고는 “당대회 개최 사실 자체가 의미있는 변화”라며 “중국은 조선의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고 강조했다고 만찬에 참석한 전직 고위 관리가 전했다. 북한이 36년 만의 당대회 개최를 통해 노동당과 국가체제를 정상화하려는 노력을, 북·중관계 강화와 동북아 정세 안정의 디딤돌로 삼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정지융 상하이 푸단대 교수는 “시 주석이 핵문제와 다른 문제를 병행하는 중국식 ‘병진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짚었다. 북한의 병진노선을 문제삼아 모든 관계를 단절하지도 병진노선을 묵인하지도 않는, 중국식 ‘핵 문제 해결과 북·중관계 강화 병행전략’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중국 뉴스포털 <신랑망>은 “국제사회의 많은 이들이 중-조(북) 대립을 바라지만, 이는 양국에 이롭지 않다”며 “리 부위원장의 이번 방문은 중-조가 이런 함정을 이성적으로 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한편, 리 부위원장이 방중 기간 100만톤의 식량을 요청했고 중국 쪽이 그 절반인 50만톤을 지원하기로 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외교부와 통일부 당국자가 말했다. 이제훈 기자,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nomad@hani.co.kr
양국언론도 민감발언 보도 피해 북과 관계 단절하지도
병진노선 묵인하지도 않는 방식
“중-조 대립 함정 피하기” 분석 지난달 방한 다이빙궈 발언도 시사점
“북 당대회…의미있는 변화” 사정이 이런데도 <신화통신>이 공개한 리 부위원장 접견 사진 속의 시 주석은 웃고 있다. 다만 시 주석은 접견에 20분 남짓만 할애했다. 리 부위원장 일행을 태운 승용차가 인민대회당에 들어갔다 나오는 데 28분 걸렸다. 속내를 털어놓는 깊은 대화가 아닌 의전적 만남이었음을 방증한다. 시 주석의 ‘웃음’과 ‘20분 남짓한 짧은 만남’의 맥락은, 지난달 중순 한국을 방문한 다이빙궈 전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의 발언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다이빙궈 전 위원은 방한 기간 비공개 만찬에서 “한국은 조선(북한)의 7차 당대회의 의미를 너무 가볍게 취급하고 깊은 분석을 하려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고는 “당대회 개최 사실 자체가 의미있는 변화”라며 “중국은 조선의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고 강조했다고 만찬에 참석한 전직 고위 관리가 전했다. 북한이 36년 만의 당대회 개최를 통해 노동당과 국가체제를 정상화하려는 노력을, 북·중관계 강화와 동북아 정세 안정의 디딤돌로 삼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정지융 상하이 푸단대 교수는 “시 주석이 핵문제와 다른 문제를 병행하는 중국식 ‘병진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짚었다. 북한의 병진노선을 문제삼아 모든 관계를 단절하지도 병진노선을 묵인하지도 않는, 중국식 ‘핵 문제 해결과 북·중관계 강화 병행전략’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중국 뉴스포털 <신랑망>은 “국제사회의 많은 이들이 중-조(북) 대립을 바라지만, 이는 양국에 이롭지 않다”며 “리 부위원장의 이번 방문은 중-조가 이런 함정을 이성적으로 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한편, 리 부위원장이 방중 기간 100만톤의 식량을 요청했고 중국 쪽이 그 절반인 50만톤을 지원하기로 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외교부와 통일부 당국자가 말했다. 이제훈 기자,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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