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중국 베이징의 한 북한 식당에서 북한 종업원들이 식당 무대에 올라 아코디언, 기타, 키보드 등을 연주하며 ‘아리랑’을 부르는 등 공연을 하고 있다. 이날 홀 안에 가득 찬 손님들의 상당수는 중국인들이었다.
르포 ㅣ 집단탈북 뒤 중국 북한 식당 가보니
중국인 가족모임 홀 가득 차
집단탈북 사건 묻자 “모른다” 웃음
북식당 전세계 12개국 130여곳 운영
90%가 중국에…매년 1천만달러 송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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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낮에 가본 중국 베이징 시내의 북한 식당은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1시간30분 동안 1층 홀에 놓인 테이블 15개 가운데 3~4개를 빼고는 모두 들어찼다. 줄잡아 30명은 넘어 보였던 이들은 대부분 (중국인) 가족 단위 손님들이었다. 주말 나들이 차림의 20대 젊은 여성 2명이 앉은 테이블도 있었다. 한쪽 테이블에 모여 앉은 5명이 유일하게 ‘한국어’를 구사할 뿐, 나머지 손님들은 모두 중국어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한 중국인 가족 식탁 위에는 중국 맥주와 남쪽의 ‘참이슬 소주’가 함께 놓여 있었다.
식당 쪽은 “점심 공연은 2층에서 예약된 경우에만 한다”고 했으나, 홀이 거의 만석이 되자 1층에서도 ‘비정기’ 공연을 시작했다. 흰색 블라우스에 검정 치마를 입고 음식을 나르던 북한 종업원들이 한복 등 무대의상으로 갈아입고 나와 ‘아리랑’을 부르고 악기를 연주했다.
비슷한 시각 베이징에 있는 또다른 북한 식당은 상대적으로 한산했다. 베이징 외곽에 위치한 이 식당은 점심 내내 손님이 전체 테이블 절반가량밖에 차지 않았다. 식당 쪽은 “일요일 점심은 손님이 가장 적은 편이고, 목·금 저녁이나 토요일에 손님이 많다”고 밝혔다. 식당은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고 있었다.
지난주 통일부가 발표한 북한 식당 종업원 집단탈북 사건에 대해 베이징의 북한 식당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한 종업원은 “잘 모른다. 어떻게 그런 소식을 아느냐”고 되레 물었고,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좋은 조국(북한)을 배반한 사람이라면 그쪽(남쪽)에도 안 좋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른 식당 종업원은 관심 없다는 듯 “모른다”며 웃었다. 종업원들이 집단탈북한 식당으로 지목된 저장성 닝보의 류경식당은 <한겨레>와의 전화 통화에서 “당분간 영업을 중단한다. 언제 재개할지는 모르겠으나 경영진의 지시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교민들에게 북한 식당 이용 자제를 요청하는 등 북한 식당도 제재 대상으로 삼고 있고, 또 이런 조처로 인해 북한 식당이 어려움을 겪는 등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실제 얼마나 영향을 받고 있는지 파악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 소식통은 “시진핑 지도부의 ‘반부패’ 드라이브 이후 중국에선 비싼 식당에서 접대를 주고받는 일이 줄었다”며 “북한 식당들도 단가가 높은 편인데, 과연 매출이 얼마나 줄었는지, 줄었다면 그 이유가 (중국의) ‘반부패’ 때문인지 (한국의 대북) 제재 국면 때문인지 알려면 시간이 좀 지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같은 북한 식당이라도 중국인들도 많이 찾는 대도시 지역과 한국인 관광객들 위주의 유명 관광지 주변 중소도시 지역은 제재 효과에도 차이가 클 것으로 보인다.
북한 당국은 외화벌이 등의 목적으로 중국과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일대에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130여곳의 식당이 해마다 1천만달러(약 115억원)를 본국에 보내고 있으며, 이 중 90%가 중국에 위치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미국의 온라인 매체 <워싱턴 프리비컨>은 2013년 미국 등 서방 정보기관을 인용해 국외 북한 식당들이 해마다 180만달러를 북한에 보낸다고 전하기도 했다. 북한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은 북한에서 선발 과정을 거쳐 춤, 노래, 마술까지 다양한 교육을 받은 뒤 파견되며, 외국 현지에서도 집단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 식당은 2000년대 초반엔 종업원들이 ‘남조선’이 아닌 ‘한국’이란 용어를 쓰고 한국 노래를 부르면서 남쪽 관광객들을 맞이하며 남북 교류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나,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부터는 ‘외화 창구’로서의 이미지가 더 강해졌다.
베이징/글·사진 김외현 특파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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