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12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굳은 표정으로 ‘개성공단 전면 중단에 따른 정부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홍용표 통일장관 발언 파문
알고도 신고 안했다면 결의 위반
‘임금 70% 순수한 노동자 몫’
역대정부 공식견해 뒤집어
입증자료 물음엔 “공개 못해”
알고도 신고 안했다면 결의 위반
‘임금 70% 순수한 노동자 몫’
역대정부 공식견해 뒤집어
입증자료 물음엔 “공개 못해”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14일 “개성공단으로 (북한에) 유입된 돈의 70%가 (노동)당 서기실에 상납되고 핵·미사일 개발 등에 쓰이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11일까지 개성공단 임금이 북한 핵·미사일 개발에 전용된다는 우려·추측은 있으나 확인된 바는 없다고 하다가, 12일 공개할 수 없는 자료가 있다고 한 데 따른 추가 발언이다. 홍 장관의 이런 발언은 잇단 말바꾸기에 따른 신뢰성 문제뿐만 아니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 2094호 위반 논란 등 나라 안팎에서 심각한 파장을 불러올 전망이다. 임박한 4월 총선을 앞두고는 ‘북풍’과 ‘퍼주기론’을 둘러싼 여야 정치권의 격한 논란이 재연될 소지도 상당하다.
홍 장관의 이날 발언은 <케이비에스 일요진단>에서 나왔다. 홍 장관은 “북한에서는 당정군이 외화를 벌어들이면 당 서기실, (노동당 중앙위원회 산하) 39호실로 이관·보관되고 있다”며 “이 돈은 핵·미사일 개발이나 (김정은 등의) 치적 사업, 사치품 구입 등에 사용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말했다. 홍 장관은 “개성공단의 경우 근로자들 임금, 기타 비용 등이 달러 현금으로 지급되는데 근로자들한테 바로 가지 않고 북한 당국에 들어간다”며 “그러한 돈의 70%가 서기실 등으로 전해져서 쓰여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홍 장관은 “개성공단에서 지급된 달러의 70% 정도가 북한 당국으로 유입되고, 사실 근로자들은 북한 원화와 물품을 살 수 있는 소위 ‘물표’라는 것을 지급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이 외화수입을 당 서기실 등에서 관리하리라 폭넓게 추측돼 왔지만, 홍 장관의 발언은 입증이 필요한 새로운 주장이다. 그러나 홍 장관은 이를 입증할 근거 자료를 공개할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정보자료라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유엔 안보리 결의 2094호 위반 논란? 홍 장관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2094호 위반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 뒤 채택된 2094호는 ‘대량현금(bulk cash) 등의 대량파괴무기(WMD) 전용 우려가 있는 경우 신고’할 것을 유엔 회원국의 의무로 결정(decide)했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유엔에 제출한 2094호 결의 이행보고서는 물론 2014년과 2015년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가 방한했을 때에도 개성공단 임금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전용된다고 보고한 적이 없다. 정부 당국자는 “홍 장관의 발언을 근거로 유엔 안보리가 한국 정부가 2094호를 위반했다고 따질 일은 없을 것”이라며 “개성공단은 홍 장관이 강조한 대로 그동안 그 의미와 성격, 효과를 국제사회가 인정해서 지속돼온 것인데, 최근 북쪽의 잇단 도발로 상황이 달라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핵개발비 전용 입증? 북에도 설명할만한 사람 없을것”
■ 개성공단 현금 유입의 70%가 핵·미사일 개발비? 홍 장관의 ‘70% 핵·미사일 개발 전용’ 발언은 며칠 새 자신의 발언을 뒤집은 것일뿐더러 역대 정부의 공식 견해를 뒤집는 것이다. 2006년 북한의 첫 핵실험 전후로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가 개성공단 폐쇄를 압박할 때, 고경빈 당시 통일부 개성공단사업지원단장은 그해 11월7일 공개 브리핑에서 개성공단 임금 지급액의 70% 남짓이 “순수하게 북쪽 근로자 몫으로 돌아간다”고 공식 발표한 바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임기 8년간에도 고 단장의 이런 발표를 뒤집거나 수정하는 발표는 없었다. 그러다 이번에 홍 장관이 사실관계 판단을 180도로 뒤집은 것이다.
개성공단 북쪽 노동자 임금이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는 개성공업지구법 등에 명시된 공지의 사실이다. 임금을 100으로 할 때 30%는 ‘사회문화시책비’(무상의료·무상교육 등 공공서비스 비용) 명목으로 북쪽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총국)이 공제한다. 나머지 70%는 총국이 입주기업한테서 받은 뒤 북쪽 노동자한테 달러로 지급되지 않고 대부분은 홍 장관이 말한 ‘물표’(물품교환권)로, 일부는 북한원화로 환산한 ‘현금임금’으로 개별 노동자한테 지급된다. 이와 별도로 임금의 15%에 해당하는 금액을 ‘사회보험료’(남쪽의 산재보험+국민연금 개념) 명목으로 총국이 입주기업한테서 일괄징수한다.
논리적으로만 보자면 사회문화시책비와 사회보험료는 징수 명목이 분명하므로 전용 논란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이를 토대로 하면, 홍 장관의 ‘70% 전용’ 발언은, 북쪽 노동자들한테 간접 지급되는 임금의 70% 모두가 북쪽의 핵·미사일 개발비로 전용된다는 얘기다. 이 경우엔, 북쪽의 개성공단 관련 기관 운영비와 노동자 생활비는 어디서 나오느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개성공단 북쪽 노동자들한테 개성의 전용상점을 통해 공급되는 쌀·밀가루·텔레비전 등 각종 생필품은 북한 당국이 국외 무역상한테 위탁해 달러를 주고 수입하는 것이다. 홍 장관의 ‘70% 전용’ 발언과 상충하는 현실이다.
■ ‘70% 전용’ 발언 입증할 자료는 있나? 이런 사정 탓인지 정부 핵심 관계자는 “정부는 북쪽 당국이 사회문화시책비와 사회보험료 명목으로 일괄징수한 달러로 북쪽 기관운영비와 노동자 생필품 공급을 충당하고, 나머지 현금 유입액의 70%는 서기실을 통해 핵·미사일 개발비로 쓰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핵심 관계자는 “북쪽이 개성공단 운영 과정에서 각종 명목으로 (입주기업한테서) 돈을 뜯어갔는데, 그게 그 명목대로 쓰이지 않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핵심 관계자는 “북쪽 예산 구조나 재정 흐름은 우리처럼 투명하게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아 시시콜콜히 따지기 어렵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이는지는 북한에도 책임있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정부가 파악한 큰 흐름이 그렇다는 것”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개성공단으로 유입된 달러가 어디에 얼마나 쓰였는지 세부적으로 입증할 자료가 없을 수도 있다는 취지로 읽힌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정부 주장대로라면 한해 60억달러에 이르는 북-중 무역과 미국 시민 등의 북한 여행으로 북쪽이 번 돈도 핵·미사일 개발에 전용되니 금지해야 한다는 얘기”라며 “말이 되지 않는 소리”라고 짚었다.
전직 고위 관계자는 “홍 장관의 ‘70% 전용’ 발언은 4월 총선을 앞두고 ‘북풍’과 ‘퍼주기’ 논란을 일으켜 보수세력을 결집하려는 청와대의 총선 개입이지 북핵·미사일 대응책이 아니다”라며 “야당의 단호한 대응과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통일부·외교부 고위 관리들의 책임있는 설명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이제훈 김진철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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