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뒷줄 맨 오른쪽)과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오른쪽 셋째)이 7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이순진 신임 합참의장(맨 앞) 보직신고식에 배석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국형 전투기(KFX·보라매) 개발 사업과 관련해 미국이 레이더 체계통합기술 등 4건의 기술 이전을 불허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차기전투기(FX) 기종이 돌연 바뀐 배경이 무엇인지, 청와대가 언제 알고 어떤 개입을 했는지 등 의혹이 잇따르고 있다.
애초 군 당국과 방위사업청은 중간 성능의 미디엄급 한국형 전투기 개발을 위한 기술 획득과 연계해 고성능의 차기전투기 사업을 추진해 왔다. 차기전투기 사업자로 선정될 외국업체로부터 한국형 전투기 제작에 핵심적인 기술을 절충교역을 통해 이전받자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방사청은 애초 보잉의 F-15SE, 록히드마틴의 F-35A, 유로파이터 타이푼 등의 경쟁입찰에서 보잉의 F-15SE를 단독 후보로 선정하고, 2013년 9월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에 올렸다. 그러나 김관진 당시 국방장관이 주재한 방추위에선 ‘스텔스 기능 부족’ 등을 이유로 이를 전격 부결 처리하고 만다. 이후 차기전투기의 작전요구성능(ROC)에 스텔스 기능이 강화됐고, 이 조건을 만족하는 유일한 전투기였던 F-35A가 지난해 3월 방추위에서 차기전투기로 선정됐다.
문제는 기종 변경으로 레이더 체계통합기술 등 4건의 기술 이전이 불가능하게 됐다는 것이다. 애초 F-15SE의 보잉은 기술 이전을 약속했다. 그러나 록히드마틴은 “미국 정부의 수출 승인(EL)을 받기 어렵다”며 거부했는데도 낙점됐다.
이에 대해 방사청 관계자는 “절충교역은 여러 선정 기준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며, 기술 이전을 약속한 보잉 또한 미국 정부의 수출 승인을 받아낼지는 속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보잉은 미국 정부의 수출 승인을 피해 제3국의 기술을 이전해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라며 “F-15SE는 업체를 상대로 하는 상업거래였지만, F-35A는 미국 정부를 상대로 하는 대외군사판매(FMS)였기 때문에 한국의 협상력이 떨어져서 기술 이전을 받아내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구나 방사청은 지난해 9월 록히드마틴과 절충교역 합의각서를 체결한 뒤에도 4건의 기술 이전이 어렵다는 사실을 숨겼다. 당시 록히드마틴은 이미 방사청에 4건의 기술 이전이 어렵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혔는데도, F-35A 선정의 정당성 홍보를 위해 이를 숨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방사청 관계자는 “이후 협상을 통해 기술 이전을 받아내려는 구상으로 공개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후 정부가 얼마나 이런 노력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정부 스스로 공개한 노력은, 올 4월 록히드마틴으로부터 “미국 정부의 수출 승인 불가” 결정이 내려졌다는 통보를 받고 석달이나 지난 뒤인 지난 7월에야 미국 정부와 기술 이전 협력 회의를 열고, 8월에 국방부 장관과 공군 참모총장 명의의 협조 공문을 미국에 보낸 게 전부다.
기종 변경과 기술 이전 문제 등에 대한 청와대 개입 여부도 의혹 대상이다.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지난해 5월 방사청과 공군 관계자, 전문가 등을 불러 주재한 한국형 전투기 관련 대책회의에 대해 “전문가들 얘기 듣는 오찬 간담회였을 뿐이고, 기술 이전 문제는 올 6월에야 확인했다”며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기술 이전이 어렵다는 내용을 담은 문건이 보고된 점, 차기전투기 기종을 F-15SE에서 F-35A로 변경한 방추위를 주재한 김관진 당시 국방장관이 현재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인 점 등에 비춰, 청와대의 역할과 책임 범위가 분명히 규명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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