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들이 지난 11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신장동 오산미군공군기지 정문 앞에서 열린 ‘주한미군의 탄저균 불법 반입 규탄, 세균전 실험실 및 훈련부대 폐쇄 촉구 국민대회’에 참석한 시위대를 보며 웃고 있다. 평택/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위험물질 반입’ 규정 위반
지자체장 “용납못해” 제재 경고
국내선 ‘재발 방지’ 협조 요청만
“불평등한 소파 개정” 목소리
지자체장 “용납못해” 제재 경고
국내선 ‘재발 방지’ 협조 요청만
“불평등한 소파 개정” 목소리
한국과 마찬가지로 독일에도 미군기지 내 생화학전 연구소에 살아있는 탄저균이 배송되었다는 사실이 최근 드러나면서, 독일 사회가 들끓고 있다. 미군기지가 들어선 지역의 시장과 주 총리가 “이런 일이 다시 되풀이돼선 안 된다”며 강력히 항의했고, 주독미군은 즉각 지역 시장에게 연구소를 공개하는 등 진화에 나섰다. 탄저균 배송사고 뒤 두달 가까이 지나도록 주한미군이 사고경위 설명조차 내놓지 않는데도, 지방 정부와 중앙 정부 어디서도 변변한 항의 한마디 나오지 않는 한국 상황과 대비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미군 기관지 <성조>와 독일 <남서부방송>(SWR) 보도를 보면, 미군은 2005년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는 탄저균 표본을 독일 라인란트팔츠주의 란트슈툴시에 위치한 미군 의료 연구실에 보낸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미군은 이 탄저균 표본은 사용되지 않다가 2013년 7월에 폐기됐다고 발표했다. 이런 사실은 지난 11일 독일 <빌트>지가 2007, 2009, 2010년 등 모두 3차례 탄저균이 독일의 미군 연구실로 배달됐다고 보도한 기사에 미군이 반박하면서 드러났다.
탄저균 반입 사실이 알려지자 독일의 지자체장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란트슈툴시의 페터 데겐하르트 시장은 “(미군의 탄저균 배송·실험을) 매우 우려하며 언짢게 생각한다”며 “(미군이) 2005년에 왜 이 연구소로 탄저균 표본을 들여왔는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군에) 우리가 (기지 사고 발생 때) 소방관을 보내는 지원 활동을 멈출 수도 있다”며 미군에 대한 지자체 수준의 제재도 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말루 드라이어 라인란트팔츠주 총리도 “우리가 (탄저균 반입) 정보를 전달받지 못한 상황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강력 경고했다. 주독미군도 지난 16일 데겐하르트 시장에게 직접 문제의 연구소를 공개하는 등 재빨리 대응했다.
비슷한 사고가 발생한 한국에선 상황이 달랐다. 탄저균 사고가 난 오산공군기지가 있는 경기도의 남경필 지사는 사고 공개 한달 보름여가 지난 7일에야 마크 리퍼트 미 대사를 만나 “탄저균 문제에 대해 명확한 설명과 정보공개가 필요하다”고 했다. 공재광 평택시장은 지난 5월30일 주한미군 사령관을 만나 “다시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한미군 측의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요청했을 뿐 경고와 항의의 뜻은 전달하지 않았다.
독일과 한국 지자체장들의 대조적 대응은 양국 주둔군지위협정(SOFA)의 규정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독일에서는 미군이 탄저균 같은 위험 물질을 반입할 때 사전에 정부의 승인을 받도록 소파에 규정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승인권은커녕 사전 통보 규정조차 없다. 독일에서는 미군이 탄저균을 무단 반입할 경우 소파 규정을 어긴 것이기에 지자체장들부터 당당히 항의와 경고를 보낼 수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주한미군의 선의에 기대 재발 방지를 애걸해야 하는 처지인 셈이다. 김형성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독일과 달리 한국 지자체장들이 미국에 항의 한마디 못하는 불평등한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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