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여당서도 요구 확산
“효력 상실·대북정책 걸림돌”
정부는 “해제 명분없다” 고수
“효력 상실·대북정책 걸림돌”
정부는 “해제 명분없다” 고수
2010년 천안함 사건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며 남북 교류를 전면 중단시킨 5·24 대북조치 5주년을 맞이하면서 관련 전문가들은 물론, 여권에서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해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북한의 ‘책임있는 조처’가 선행돼야 한다는 원칙론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달 3~13일 대학교수와 연구원, 남북경협 기업 대표 등 통일·외교·안보 분야 전문가 6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5년 남북관계 현안에 관한 전문가 설문조사’를 보면, 향후 남북 경협 확대를 위해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과제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62.3%가 ‘5·24 조치 해제’를 꼽았다.
여권에서도 해제 필요성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인 정병국 새누리당 의원은 21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권도 바뀌었고 새로 출범한 이 정부의 통일부 수장도 바뀌었고 그런 과정에서 전향적으로, 전격적으로 변화를 줄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 모임인 ‘아침소리’도 최근 “5·24 조치의 긍정적 효과는 이미 그 수명을 다했고, 이로 인해 오히려 적극적인 대북개입정책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여전히 ‘사과 우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이달 청와대·통일부·외교부·국방부의 장차관급 인사와 핵심 보직의 차관보급 인사 등 110명을 대상으로 5·24 조치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을 묻자 ‘정부가 5·24 조치를 좀 더 유연하게 운용하면서 사실상 철회해야 한다’와 ‘대북 압박을 강화해 북한이 사과를 먼저 하게 해야 한다’가 나란히 24.3%의 응답률을 기록해 팽팽하게 맞섰다.
다만, 지난 3월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임명된 뒤 정부에서는 미미한 기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27일 5·24 조치 이후 처음으로 민간단체의 대북 비료지원을 승인했다. 지난 4일에는 6·15 남북공동행사를 위한 남북간 사전접촉을 승인했다. 지난달 17일 통일부 고위당국자는 5·24 조치에 대해 “풀 생각이 있으니 북측과 대화하자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22일 ‘현 상태로는 5·24 조치의 전면 해제는 불가능하다’는 방침을 재확인하면서도, 대북 인도적 지원과 국제사회가 참여하는 남북협력 사업에 대해서는 가능성을 열어뒀다. 당정은 이날 국회에서 홍용표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남북관계 현안 대책협의를 열고 이런 입장을 정리했다고 원유철 정책위의장이 전했다.
북한이 천안함 사건과의 연관성을 부인하고 있어 정부로서도 5·24 조치의 해제 명분을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전문가들은 우회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21일 국회 토론회에서 “5·24 조치는 명시적으로만 선반 위에 올려놓고 방북과 교류와 지원과 협력 사업을 사안별로 승인하는 사실상의 5·24 무력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5·24 조치는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해제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남북관계 변화를 위해서는 정부가 한층 적극적으로 5·24 조치 해제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단계적 해제나 사안별 승인은 일회성이 될 위험도 있고, 선택적이란 한계가 있어 언제든 과거로 돌아가버릴 수도 있다”며 “북한으로서는 그런 방식보다는 안정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얻기 위해 5·24 조치의 전격적인 해제나 금강산 관광 재개 같은 ‘빅딜’을 바랄 것”이라고 말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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