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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남북 ‘임금 갈등’ 분수령…갈림길에 선 개성공단

등록 2015-04-07 21:31수정 2015-04-08 21:48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맨 오른쪽) 등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단이 7일 오후 개성을 방문한 뒤 경기도 파주시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로 돌아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파주/연합뉴스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맨 오른쪽) 등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단이 7일 오후 개성을 방문한 뒤 경기도 파주시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로 돌아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파주/연합뉴스
남북 기싸움 새 국면 맞나
개성공단이 다시 갈림길에 섰다.

10일부터 북한이 일방적으로 인상한 개성공단 북쪽 노동자들의 3월분 임금 지급이 시작된다. 북쪽 당국은 자신들이 통보한 대로 오른 임금을 지급하라고, 남쪽 당국은 이를 절대 수용하지 말라고 기업들을 몰아붙여 왔다. 하지만 임금 지급일을 사흘 앞둔 7일 북쪽 총국이 남쪽 개성공단관리위원회와 임금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고 이날 공단을 방문하고 돌아온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들이 전했다. 남북 협의 여하에 따라 개성공단을 휘감아온 임금 갈등이 분수령을 맞게 됐다.

북쪽 당국은 지난해 11월 일방적으로 개성공단 노동규정 중 13개 항목을 개정했다. 지난 2월말에는 이 중 2개 항을 적용해 3월부터 월 최저임금을 74달러로 5.18% 인상한다고 밝혔다. 남쪽의 4대 보험료와 유사한 사회보험료도 산정 기준을 노임에 가급금(시간외수당)을 포함한 금액의 15%(기존은 노임의 15%)로 바꿔 5.5%(8.6달러) 올리겠다고 통보했다.

남쪽 당국은 북쪽 요구에 응하지 말라고 기업들의 고삐를 바짝 좼다. 정부는 2일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에 북쪽의 일방적인 최저임금 인상 요구에 따르지 말고 기존대로 급여와 사회보험료를 지급하라고 공문을 보냈다. 만약 북쪽 요청을 따를 경우 방북 승인을 내주지 않거나 금융 지원 제한부터 사업 승인 취소까지 할 수 있다는 경고도 함께 전달했다.

북 ‘일방 인상’은 수익 보충 의도
공단 운영권 장악 시도 분석도
북 어제 협상 뜻 전해와
대치 국면 풀릴지 관심
올 첫 부과 토지사용료 새 불씨

북 일방조처 철회하고
남 5·24조치 풀어야
개성공단 활성화 가능성

기존의 개성공단 최저임금 인상 상한은 5%다. 북쪽 인상률은 상한보다 단지 0.18%포인트 높다. 하지만 얼마를 더 올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남쪽은 보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번에 북쪽이 남북 합의 없이 개정한 노동규정을 받아들일 경우, 앞으로 북쪽이 보험·세금 규정까지 모두 바꾸는 등 개성공단 전반을 일방적으로 운영해나갈 빌미를 주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북 사이에 낀 기업들은 불안한 눈길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입주기업 대표는 “어떻게 상황이 변할지 몰라 좌불안석”이라고 했다. 김서진 개성공단기업협회 상무는 “임금인상을 들어주지 않아 북쪽 노동자들이 잔업 등을 거부하면 작은 기업들이나 납기일이 닥쳐온 기업들은 상황이 훨씬 더 급해진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임금 갈등은 2013년 5개월간 개성공단이 폐쇄됐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북쪽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 등을 이유로 북쪽 노동자들을 철수시켰고, 남쪽은 기업인들을 귀환시켰다. 당시 조업 중단으로 입주기업은 신고액 기준 1조566억원의 피해를 입었다. 그해 8월 남북은 7차례 당국 실무회담 끝에 ‘가동중단 재발 방지’와 ‘개성공단의 국제화’ 등을 담은 합의서를 만들고 이를 이행하기 위해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를 만들었다. 이번에 북쪽이 일방적으로 노동규정을 개정한 것은 공동위에서 남북이 협의해 문제를 풀기로 한 합의를 위반한 것이라는 점에서 또다시 폐쇄 사태 이전으로 태도를 바꾼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북쪽이 일방적으로 노동규정을 개정한 이유는 뭘까? 우선 북쪽이 개성공단에서 애초 계획대로 거두지 못한 수익을 보충하기 위한 움직임이란 분석이 있다. 조봉현 아이비케이(IBK)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도 개성공단 사업에 대해서 분석을 해보니 기대보다 이익을 내지 못했고 이를 어느 정도 보충하려는 시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북전단 살포와 한-미 연합 군사훈련에서 원인을 짚는 시각도 있다. 또 북쪽이 아예 개성공단의 성격을 ‘북쪽 주도’로 바꾸려는 움직임의 시작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연철 인제대 북한학과 교수는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 당시 개성공단에서 우리 쪽 공무원을 퇴거시키는 사건부터 8년간 문제가 중첩되어온 것이 이번에 또 터진 것”이라며 “북한이 개성공단의 성격을 남북 공동 운영에서 북한 주도로 바꾸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부과되는 토지사용료도 또다른 갈등의 불씨다. 2004년 북쪽 총국과 남쪽의 현대아산 등 개발업체가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면서 10년이 지난 다음해인 2015년부터 토지사용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북쪽 총국 관계자가 지난해 11월 남쪽 개성공단관리위를 방문해 토지사용료 문제를 협의하자고 통보해둔 상태다. 북쪽은 2009년 3.3㎡당 5~10달러의 토지사용료를 당장 걷겠다고 주장했으나 남쪽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다. 정부는 3.3㎡당 2.8달러인 베트남 국제공단 사례 등에 비춰 무리한 요구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번에 갈등을 해결하고 개성공단을 정상화해 나가지 못하면 개성공단의 위상이 남북 모두에서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김연철 교수는 “북-중 접경 지역에 중국이 만든 위탁가공단지들이 들어서고 있고, 러시아에 진출한 노동자가 2만명을 넘어서는 등 북한 내 개성공단의 상대적 지위가 낮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남북 갈등의 진원지가 되어온 개성공단에 대한 남쪽 내 피로도도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북쪽은 일방적 조처를 철회하고 남북 합의 정신으로 돌아와야 하며, 남쪽도 5·24조치 해제 등 남북 관계 복원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북한이) 기존 합의부터 지키고, 그 합의에 따라 (임금 인상 문제도) 해결하고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우리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를 막아 남북 관계 개선에 진정성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방법으로 남북 대화의 물꼬를 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연철 교수는 “우리 정부가 5·24조치를 해제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5·24조치로 신규 투자가 금지된 상황에서 개성공단을 발전시킬 방안은 없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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