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3월25일 오후 네덜란드 헤이그 미국대사관저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가운데)의 권유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헤이그/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일본에 진정한 반성을 요구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가, 군사적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과 협력을 강화하는 모순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한국이 과거사를 문제삼는 것은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대한 경계감과 직결돼 있기 때문인데, 두 문제가 마치 별개인 것처럼 대처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성의있는 조처를 요구해왔다. 지난해 3·1절 기념사에선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다”며 결기를 보였고, 지난 지난 8월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상처는 당연히 치유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지난 2년동안 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일 정상회담도 없다며, 아베 신조 총리의 역사 수정주의에 맞서는 모양새를 보여왔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29일 한·미·일 정보공유 약정을 체결한다고 26일 발표함으로써, 일본에 과거사 반성을 요구하는 근본 취지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미·일 정보공유 약정 체결을 기반으로 미사일방어(MD) 등 핵심 군사적 분야에서 한-일간 군사협력이 가속화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나 ‘과거 기억’의 문제는 대외전략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한국의 역대 정부가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전향적 조처를 요구해 온 것도 단순히 식민지 피지배 사실에 대한 불편한 감정 차원을 넘어,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대한 경계심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베 신조 총리 정부가 지난 7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각의 결정을 통해 ‘전쟁할 수 있는 일본’으로 나아가고 있는 등, 일본에 대한 한국의 위협인식이 부쩍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외교안보 분야의 전직 고위당국자도 “과거사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일본이 군사대국화로 가는 것을 가장 위험하게 보기 때문”이라며 “역사 문제로 일본과 정상회담을 2년동안 하지 않는 것도 비정상적이지만, 그런 한편으로 정보공유 약정을 맺겠다는 것은 자기 분열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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