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실각에서 사형까지
사진 속 장성택 전 조선노동당 행정부장은 죽음을 직감한 듯 눈을 감았고, 얼굴은 창백했다. 고개를 떨구고 입을 다물었다. 남색 인민복 차림에 평소처럼 검은 빛이 도는 안경은 그대로였지만, 팔짱을 끼고 뒷목을 잡은 군인의 위세에 눌린 듯했다. 공식석상에서 편하게 웃던 모습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앞에는 특별군사재판의 판사로 보이는 3명이 인공기를 배경으로 엄숙하게 앉았다. 서기 1명이 앉아 재판 내용을 기록했다. <로동신문>은 재판 뒤 곧바로 장 전 부장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다고 전했다.
지난 3일 실각설이 나오고부터 사형집행까지 11일이 걸렸다. 지난 3일 국가정보원이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하면서 알려진 장 전 부장 실각설은 원래 핵심측근인 리룡하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을 공개처형하면서 불거졌다. 하지만 당시에는 실각 여부는 최종 확인되지 않은 가능성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튿날인 4일 북한 노동신문에는 ‘혁명적 신념은 목숨보다 귀중하다’는 글에서 “오늘 어느 한순간이라도 당에 충실하지 못하면 충신이 될 수 없다”, “충신은 99%짜리란 있을 수 없다” 등의 내용이 등장했다. 이것이 장 전 부장의 실각을 의미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 날 국회 상임위에 나온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장 전 부장의 실각을 확언하지 않았다.
‘설’이 사실로 바뀐 계기는 북한 영상을 통해서였다. 북한 <조선중앙텔레비전>이 지난 7일 오후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의 군부대 시찰 기록영화 ‘위대한 동지 제1부 선군의 한길에서’를 재방송하며 종전에 나왔던 장 전 부장의 모습을 모두 삭제해 내보낸 것이다. 북한은 숙청한 주요 간부들은 기록에서 배제해왔다.
이틀 뒤인 9일 북한은 “장성택이 반당·반혁명 종파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모든 직무에서 해임하고 당으로부터 출당·제명한다”고 발표했다.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통해서였다. <조선중앙텔레비전>은 장 전 부장이 8일 열린 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인민보안원에게 끌려나가는 장면을 담은 사진을 보도하기도 했다.
북한은 숙청을 공식화한지 나흘만인 13일 장 전 부장의 재판 내용과 처형 사실을 전격 공개했다.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장 전 부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일한 여동생인 김경희 당 비서의 남편이자 김정은 제1비서의 고모부라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그를 정치범수용소에 수용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북한은 그를 신속하게 처형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