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각 기정사실화
“재기불능 단정은 무리” 신중론도
“재기불능 단정은 무리” 신중론도
실각 가능성이 제기된 북한의 장성택 조선노동당 행정부장의 행적이 삭제된 다큐멘터리 영화가 북한 매체에서 방영됐다. 측근 인사의 처형과 친인척 소환에 이어 그의 실각 가능성을 보여주는 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8일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의 <조선중앙텔레비전>은 7일 오후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를 찬양하는 내용의 <위대한 동지 1부, 선군의 한길에서>라는 57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를 재방송했는데, 과거 장 부장이 등장했던 장면이 모두 삭제되고 비슷한 다른 장면으로 대체됐다. 예를 들어 애초 이 영화에는 장 부장이 김 제1비서와 함께 걷는 장면이나 손뼉치는 장면 등이 17차례 나왔지만 재방송된 영화에서는 이런 장면이 모두 삭제됐다. 통일부의 한 관계자는 “분량과 내용은 같은데, 장 부장의 등장 장면이 삭제됐다. 그의 실각이 기정사실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김정은 제1비서의 군부대 시찰 활동을 담은 것으로, 지난 10월9일 처음 방영된 뒤 모두 9차례 재방송됐다.
그의 행적은 영화뿐만 아니라 뉴스 분야에서도 사라지고 있다. <연합뉴스>는 이날 북한 관영 통신사인 <조선중앙통신>의 누리집에서도 장 부장과 관련된 기사가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사실들을 고려할 때 장 부장의 실각은 점점 확실해지고 있다. 통일부 관계자는 “북한에서는 고위급 인사가 실각하거나 제거될 경우, 과거 기록물 등에서도 당사자의 흔적을 지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일성 주석의 둘째 부인이었던 김성애나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자로 몰렸던 박남기 전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의 경우도 이렇게 영상물에서 삭제된 일이 있다. 앞서 국가정보원은 장 부장의 측근인 리룡하 당 행정부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이 외화 횡령 등 혐의로 처형당했고, 외국 대사로 나가 있던 장 부장의 친인척이 북한으로 소환당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장 부장 흔적 지우기’를 근거로 그가 완전히 실각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 신중한 의견도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아직 장 부장의 혐의나 실각 여부가 완전히 확인되지 않았다. 뭔가를 단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장 부장의 측근에 대한 제거가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그의 측근으로 알려진 박봉주 내각총리는 연일 공개 활동을 벌이며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박 총리는 7일 당·정·군의 고위 간부와 함께 ‘건설부문 일꾼 대강습’ 참가자의 숙소를 방문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박 총리는 장 부장과 함께 2002년 자본주의 시장경제 요소를 일부 도입한 이른바 ‘7·1 경제관리개선 조치’를 주도한 데 이어 김정은 정권에서도 경제·관광 특구 설치 등 주요 경제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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