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로켓발사 역사는
오늘의 ‘은하3호’까지 이어진 기술적 토대를 감안하면, 북한의 로켓 발사 역사는 1990년 국제사회에 처음 알려진 ‘노동1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은 ‘화성7호’라고 부르고 있지만, 국제사회에선 미 정찰위성이 1990년 5월 처음 발견한 곳의 지명(함경남도 함주군 노동리)을 따 노동1호라는 이름이 붙었다. 북한의 첫 장거리 미사일인 노동1호는 몇 차례 개량 과정을 거치면서 이란, 파키스탄 등에 기술과 부품이 수출됐다. 북한은 1993년 노동1호를 함경북도 화대군 대포동에서 동해로 시험발사했다.
1998년 8월 북한이 발사한 ‘대포동1호’(북한 이름 ‘백두산1호’)는 첫 다단계 추진체였다. 1단계 로켓으로 노동1호를 사용했고, 1, 2단계 분리까지는 성공했으나 궤도 진입에는 실패한 채 1600㎞가량을 날아 태평양에 떨어졌다. 당시 ‘대륙간 탄도미사일’이라고 표현한 한국 정부와 달리, 미 국무부는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북한이 아주 작은 위성(광명성1호)을 지구 궤도에 올리려고 했으나 실패한 것으로 결론지었다”고 밝혔다.
대포동1호가 대포동2호(북한 이름 ‘은하1호’)로 개량되면서 비행 가능 거리는 획기적으로 늘어났다. 대포동1호는 1700~2200㎞ 수준이었지만, 대포동2호는 4000~6000㎞까지 가능할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2006년7월 시험발사 때 대포동2호는 1단 추진체가 분리되지도 못한 채 42초만에 공중에서 추락했다.
은하2호부터는 국제사회도 북한식 이름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2009년4월 북한은 인공위성 광명성2호를 탑재한 운반로켓 은하2호를 발사했다. 북한 당국은 발사 9분2초만에 광명성2호가 궤도에 진입했다고 발표했지만, 2단 추진체는 태평양 3846㎞ 지점에 떨어졌고, 3단분리는 실패했다. 북한은 지난 4월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발사장에서 인공위성 광명성 3호를 탑재한 은하3호를 발사했으나, 1단분리 실패로 2분 만에 공중에서 폭발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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