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참가자 기자회견> 지난 7~9일(현지시각)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보 구축’을 주제로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반도 세미나가 끝난 뒤, 참가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차례로, 이기호 한신대 평화와공공성센터장, 쥬르겐 스테튼 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뉴욕사무소장, 크리스토트 폴만 에버트 재단 한국사무소장, 이행우 미주동포전국협회장, 스튜어트 토르손 미국 시라큐스대 맥스웰행정대학원 교수. 뉴욕/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뉴욕 ‘한반도세미나’ 폐막
케리 “리용호, 합의이행 믿어도 된다 말해”
남쪽과도 분위기 호전 “잘해보자” 발언도
케리 “리용호, 합의이행 믿어도 된다 말해”
남쪽과도 분위기 호전 “잘해보자” 발언도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보 구축’을 주제로 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등 5개 단체가 공동주최해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반도 관련 세미나가 9일(현지시각) 3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폐막했다.
북한은 이번 세미나에서 비핵화 관련 사전조처 등 최근 중국 베이징에서 미국과 합의한 사항을 지키겠다는 뜻을 거듭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9일 세미나에 참석해 특별연설을 한 존 케리 미 상원 외교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성 부상과의 만남에서 이런 말을 전해들었다며, “또 리 부상이 미국과 싸우지 않고 다른 관계를 맺길 바라고 있다는, ‘마음에서 우러난’ 의사 표명을 했다”고 말했다. 케리 위원장은 “그들은 합의사항을 지킬 것이라며, 우리가 그것을 믿어도 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리 부상은 또 10일 미 외교정책협의회 세미나에서도 같은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에번스 리비어 올브라이트 스톤브릿지그룹 선임국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북한 쪽으로부터) 2·29 베이징 합의가 이행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북쪽 반응은 긍정적이었고, 새로운 길을 찾아갈 준비가 돼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한반도 세미나 의미 이번 세미나는 ‘트랙 2’ 성격의 민간행사였지만, 6자회담 참가국의 명망있는 한반도 전문가 및 한반도 문제를 직접 다룬 전직 고위관리들이 대거 참석한데다, 지난달 29일 북-미 베이징 합의 직후 열려 더욱 높은 관심을 끌었다. ‘트랙 2’ 회의는 구체적인 합의사항을 도출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서로간의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들어보고 차후에 이를 정책 결정과정에도 반영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이번 세미나에서 주최 쪽이 ‘채텀 하우스 룰’(chatham house rule, 토론장에서 자유롭게 자기생각을 말하되, 참석자들은 외부에 ‘누가 무슨 말을 했다’는 것을 밝히지 않기로 미리 약속하는 토론방식)을 강조한 것도 서로의 다양한 생각을 숨김없이 들어보기 위함이었다.
북한 쪽은 이번 세미나에서 ‘선 북-미 관계 개선, 후 비핵화 사전조처’라는 북한의 기존 입장을 되풀이 했으나, 전반적인 분위기는 상당히 고무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스튜어트 도손 맥스웰스쿨 한반도문제연구센터 소장은 이번 세미나를 정리하는 기자회견을 통해 “각국 참가자들이 모두 솔직하고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했으며, 분위기가 매우 우호적이었다”며 “향후 이 지역의 평화와 신뢰구축을 위한 작은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한국, 미국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건설적 만남이었고, 북한에 대해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고 입을 모았다. 또 북한이 ‘김정은 체제’ 이후,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강하게 희망하고 있음을 확인해 향후 비핵화 협의과정에서의 변화도 기대해 볼 수 있게 됐다. 다만 한국과의 관계개선에 대해선 최소한 이명박 정부가 물러날 때까지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짐작하게 했다.
이번 세미나의 ‘옥에 티’는 민간 세미나에 한국 정부 관계자가 ‘통미봉남’을 불식시키겠다며 무리하게 참석을 압박하고, 별도의 남북협의를 일방적으로 추진하면서 민간 세미나의 초반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든 것이다. 이는 국제관례에 무지하거나 이를 무시한 처사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이마저도 남북화해 분위기 조성에 작은 기여를 했다는 평가도 일고 있다. 북한은 첫날 세미나에서는 남쪽의 별도 남북협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남쪽 민간 관계자들과도 접촉을 피했으나, 이튿날에는 분위기가 많이 호전돼 남쪽 관계자들과 함께 사진도 찍고, 남쪽 대표단 일원으로 참석한 임성남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도 ‘앞으로 잘해봅시다’라고 말하며 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남북한 정부 관계자들은 기존의 공식입장을 주장하면서도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으려 애쓰고, 또 상대방의 주장에도 강하게 반박하지 않는 등 서로 조심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분위기 호전에 도움을 준 것으로 여겨진다. 세미나에 참석한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앞으로 6자회담이 재개되면 리 부상과 임 본부장이 또 만나지 않겠느냐”면서 “뉴욕 세미나가 좋은 밑거름이 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북-미 관계가 생각보다 빨리 개선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며 개인적 추정을 전제로, “세미나에 참석한 북한과 미국 관계자들의 움직임을 보면 ‘케리 위원장이 머지않은 시간 안에 북한을 방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세미나 이뤄지기까지 이번 세미나는 처음 독일 에버트 재단과 미 시라큐스대 맥스웰스쿨이 공동주최자로 알려졌으나, 이 세미나의 산파역은 미주동포전국협회와 한신대 평화와공공성센터였다. 여기에 재미동포인 스펜서 김이 이끄는 태평양세기연구소 등 5개 단체가 공동주최했다. 지난 2004년 워싱턴에서 남북한과 미국 의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는 3국 의원회의를 개최했던 재미동포 통일운동가인 이행우 미주동포전국협회 회장과 동아시아의 민간 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는 모임을 구상하던 이기호 한신대 교수가 2010년 말 이번 세미나의 얼개를 구성했고, 지난해 초 에버트 재단이 재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고, 제임스 스타인버그 전 국무부 부장관이 학장으로 있는 시라큐스대 맥스웰스쿨이 합류했다. 또 동아시아 문제에 관심이 높고 지금도 영향력이 큰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의 흔쾌히 참석하기로 하면서 각국의 전직 외교장관 등 거물급 인사들도 잇따라 참석을 원한 것으로 전해진다. 애초 2월20일 열 계획이었던 이번 세미나가 키신저 전 장관의 일정에 맞춰 3월7일로 연기했는데, 공교롭게도 그 사이(2월29일) 북-미 합의가 이뤄져 북한 관계자들의 비자 발급이 상대적으로 수월해지고, 세미나에 대한 관심도 더 높아지게 됐다. 세미나 주최 쪽은 올해 세미나를 시작으로, 앞으로도 매년 이 세미나를 이어갈 계획을 갖고 있다.
뉴욕/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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