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전 정상회담서도 사전통보 못받아 서운
외국공관장 불러 상대국 외교 항의 이례적
전문가들 “1980년대 냉전외교 부활” 지적
외국공관장 불러 상대국 외교 항의 이례적
전문가들 “1980년대 냉전외교 부활” 지적
한-중 외교갈등 조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중과 관련해 한국 정부의 고위 인사들이 잇달아 중국 정부에 사실상 ‘공개 항의’를 하고, 이에 대해 중국 쪽이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는 등 한국-중국 정부간 외교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이명박 정부 들어 누적돼온 불편한 관계가 자칫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의 분야로 확산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 주한 중국 대사 초치와 외교마찰 신각수 외교통상부 1차관이 지난 3일 장신썬 주한 중국 대사를 불러, 중국 정부가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을 수용한 데 대해 항의한 것은 사실상 ‘외교 간섭’이라는 지적이 많다. 자국 주재 외국 공관장을 부르는 외교적 ‘초치’ 행위는 자국 문제와 관련해 상대국 정부에 항의할 때로 국한되는 게 외교 관행이다. ‘과욕’으로 비칠 수도 있는 정부의 이런 이례적인 ‘돌출 외교’엔 여러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 정부는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공격에 의한 것이라는 심증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정부의 김 위원장 방중 수용을 북한에 ‘면죄부’를 주려는 것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하지만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공식 발표한 적이 없는 한국 정부가 중국 정부에 항의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둘째,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상하이 엑스포 개막식 참석을 계기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했는데도 김 위원장의 방중을 미리 통보받지 못한 것에 대한 서운함도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중 관계는 한-미 동맹에 비견되는 ‘혈맹’에 가깝고, 더구나 중국 정부는 지금껏 단 한번도 김 위원장의 방중을 주변국 정부에 사전에 통보한 적이 없다.
한국 정부의 이런 반응을 냉전외교의 부활로 간주하는 시각도 있다. 한 외교전문가는 “노태우 정부가 1988년 북한을 포함한 사회주의 국가들에 개방정책을 표명한 ‘7·7선언’으로 국제무대에서 남북 대결 외교가 사라진 뒤 거의 처음 있는 일로 보인다”고 말했다. 통일부가 4일 오후 이뤄진 현인택 통일부 장관과 장신썬 대사의 면담 초반을 언론에 10분이나 공개한 것도 이례적이다. 이런 식의 면담은 통상 보도용 촬영에 필요한 2~3분 남짓만 언론에 공개하는 게 외교적 관행이다. 이런 이유로 현 장관이 취재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중국의 책임 있는 역할’을 여러 차례 강조한 것은 언론 보도를 염두에 둔 ‘의도된 발언’이라는 해석이 많다. 장 대사가 면담 뒤 기자들에게 “중국은 책임 있는 대국으로, 늘 책임 있는 역할을 해왔다”고 반박하고 나선 것은, 앞으로 한-중 관계가 녹록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 사례로 풀이된다. ■ 문제점은 무엇?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한국 정부가 지난달 30일 후 주석의 천안함 관련 발언을 국내 정치적 목적으로 ‘과잉해석’해 홍보했다가 불과 사흘 뒤 김 위원장의 방중에 당황해 ‘전략적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시 후 주석이 이 대통령에게 천안함 사고와 관련해 위로의 뜻을 밝히며 과학적이고 투명한 조사를 강조한 것을 두고, 청와대는 중국이 한국 정부의 입장을 사실상 지지한 것으로 해석해 알렸다. 하지만 중국 언론들은 후 주석의 천안함 관련 발언을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지난달 29일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과 다이빙궈 중국 국무위원의 6자회담 전화협의, 김 위원장의 방중, 8일로 예정된 후 주석의 러시아 방문, 24~25일 미-중 전략·경제대화 등 이달 내내 6자회담 당사국들의 고위급 외교가 진행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외교가 천안함 사고와 6자회담을 연계시키는 데 매달리다 고립을 자초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많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국제정세를 보고 외교를 해야지, 국내 정치적 감각으로 외교를 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용인 이제훈 기자, 베이징/박민희 특파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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