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동조사단이 밝힌 26일 천안한 침몰 시간대별 상황
[천안함 침몰] 증언으로 재구성한 침몰 순간
‘살아야한다’ 갑판 올라오니 함미 사라져
‘적일지 모르니 머리 숙여!’ 목소리에 공포
구출자 세보니 56…57…58명 뿐이었다
* KNTDS : 해군전술지휘통제시스템
‘살아야한다’ 갑판 올라오니 함미 사라져
‘적일지 모르니 머리 숙여!’ 목소리에 공포
구출자 세보니 56…57…58명 뿐이었다
* KNTDS : 해군전술지휘통제시스템
병기장 오성탁 상사는 저녁때 늘 들던 덤벨 대신, 이날은 펜을 쥐고 일지에 날짜를 적었다. 2010년 3월26일. 좋아하는 운동을 오늘은 하지 못한다. 업무보고를 해야 한다. 3월16일 평택항을 떠난 지 열흘째. 전장 88m, 전폭 10m의 갑판에서 조깅하는 것만으로 성에 안 차는 운동광 ○○○ 하사와 ○○○ 병장은 후타실로 운동하러 간다며 손짓했다. 늘 함께 운동하는 5명이 있다. 평소 반바지와 속옷을 입고 운동하던 전준형 병장은 “오늘은 쉬겠습니다”라며 침실로 들어갔다. 오 상사는 펜을 잠시 놓고 시계를 봤다. 밤 9시가 막 넘어가고 있었다. 격실과 배 곳곳은 평화로웠다. 통신장 허순행 상사는 전탐실 뒤 계단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둘째를 임신한 아내의 목소리를 듣고 딸과 통화한 뒤 통신실로 돌아왔다. 함장 최원일 중령은 함내 순찰을 마치고 함장실로 들어오며 옷깃을 여몄다. 저녁 8시 이후 야간 당직자는 29명이었다. 출항한 지 5일째인 며칠 전 최 중령은 바다에서 춘분을 맞았다. 그러나 6노트(시속 11.1㎞)로 기동하는 천안함 갑판에 서서 맞는 바닷바람은 여전히 차가웠다. 이날 백령도 최저기온은 영하 0.7℃였다. 케이엔티디에스(KNTDS·해군전술지휘통제시스템) 화면에 천안함이 발신하는 ‘자함 위치’가 깜빡였다. 조금 전 최 함장이 순찰하고 온 통신실에서는 이날 밤 9시19분30초부터 33초간 여느 때처럼 국제상선통신망을 체크했다. “○○○, 여기는 ○○○, 감도 있습니까?” “여기는 천안함 이상.” “여기는 ○○○, 감도 양호 감도 양호 이상.” “귀국 감도 역시 양호 교신 끝.” 해군사관학교에 45기로 입학한 뒤 숱하게 경험한 출항이지만, 조금 피곤했다. 케이엔티디에스를 보며 최 중령은 목 뒷덜미를 주물렀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뭔가에 맞아 광대뼈가 부어올랐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성탁 상사는 출입문을 찾아 손을 뻗었다. 벽을 더듬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몇 초 전까지 지하 2층 격실에서 업무 보고를 준비하고 있었다. “꽝, 쿵!” 소리와 함께 몸이 솟구쳤다. 소리에 고막이 아팠다. 화약 냄새는 전혀 없었지만 전기 불빛이 나갔다. 출입문 위치를 알고 있었지만 문이 잡히지 않았다. 발에 뭔가 차였다. 출입문이었다. 문 앞에는 책상들이 무너져 쌓여 있었다. ‘살아야 한다.’ 그건 생각이 아니라 본능이었다. 집기를 치우고 조금씩 문을 열었다. 15분 만에 그는 ‘지옥’에서 빠져나왔다. 허순행 상사는 정신을 차리려 머리를 흔들었다. 배는 두 동강 나 있었다. 함수는 우현으로 완전히 기울어 있었다. 최원일 함장은 충격으로 함장실에 갇혀 있었다. 허 상사 등 승조원 4~5명이 내려준 소화호스를 허리에 묶고 갑판으로 빠져나왔다. 내연장 정종욱 상사는 달빛에 함미가 사라진 천안함을 확인했다. 바람이 살을 에던 갑판에 올랐다. “적일지 모르니 다 머리 숙이고 있어라!”는 소리도 들렸다. 20여명이 체감온도 영하의 추위와 공포에 떨고 있었다. 최 함장은 부장에게 내부에 갇힌 승조원 구출을 지시하고 작전관에게 인원을 파악하라고 명령했다. 부상당해 움직일 수 없는 장교, 부사관, 병사를 동료가 서로 업었다. 9시28분 포술장이 휴대전화를 집어들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무의식 중에 평소 걸던 지휘통제실(지통실)이 아니라 부대 교환대 번호를 눌렀다. “배가 우측으로 넘어갔고 구조가 필요합니다!” 2함대 상황반장은 9시30분 통신망으로 대청도의 고속정 편대에 긴급 출항을 지시했다. 2함대의 연락을 받은 인천해경 501, 1002 함정도 출동했다. 해군의 연락을 받은 어업지도선도 9시50분 항구를 떠났다. “56… 57… 58.” 최 중령은 최종 인원을 다시 셌다. 9시32분 고속정 5척이 도착했다. 고속정에서 천안함에 홋줄(배가 파도에 흔들리지 않도록 묶는 줄)을 걸었다. 천안함 작전관이 고속정으로 뛰어넘어가다 물에 빠졌다. 높은 너울 파도가 문제였다. 홋줄을 풀어야 했다. 초조해진 최 함장의 휴대전화가 10시32분 울렸다. 2함대 사령부 22전대장이었다. “뭐에 맞은 것 같습니다.” “뭔 거 같아?” “함미가 아예 안 보입니다.” “어디? 함미 어디부터?” “연돌(굴뚝)이 안 보여요, 고속정이나 리브(RIB·구조보트) 빨리 조치해 주십시오.” “생존자는?” “58명이고 다수가 피를 흘리며, 못 일어서는 중상자가 2명입니다.” 10시38분께 현장에 도착한 해경 구조용 고무보트가 승조원 19명을 차례로 실어날랐다. 먼저 구출한 부상자를 싣고 어업지도선이 백령도로 출발한 밤 11시8분부터 11시13분까지 나머지 36명을 해경이 구출했다. 부상자를 제외한 51명이 해군 성남함으로 환승해 평택 2함대 사령부에 도착한 것은 27일 새벽 2시였다.
기상청 자료를 보면, 3월27일 안개 속 가로등처럼 달무리가 졌다. 그날도 백령도 바다에는 흐릿한 달이 떴다. 9시21분57초 천안함에서 발신되는 ‘자함 위치’ 신호가 사라진 케이엔티디에스 화면을 보며 상황병이 고개를 갸웃하던 2함대 상황실 위로, 9시21분58초에 진도 1.5의 피(P)파(인공지진으로 분류)를 감지한 백령도 지진파 관측소 위로, 달빛이 비쳤다. 36.5℃의 체온이 백령도의 거센 바닷속으로 섞여 들어갔지만, 바닷물은 여전히 찼다. 9시16분 여자친구에게 마지막 문자메시지를 보냈던 차균석 하사의 뜨거운 사랑도, 찬 바닷물에 젖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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