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 전 통일부장관
[북 핵실험 파문] 국내·외 전문가들의 진단과 해법
북한이 제2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정부는 대량파괴무기 확산방지구상(PSI·피에스아이) 전면 참여라는 ‘강경 대응’으로 맞섰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도 한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폭풍 속으로 빨려들고 있다. 현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이명박 정부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다.
■ ‘핵보유국’이 북한 진짜 목적은 아닐 것
북한의 진짜 전략은 핵보유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진짜 전략은 좀더 많은 경제 지원, 좀더 빠른 북-미 수교를 쟁취해 2012년까지 강성대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면 우선 한국·미국·일본 등의 제재가 장기화될 것이고, 중국도 북한에 대해 아주 비판적·비협조적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북한이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 둘째, 일본의 핵무장화를 막을 수 없다. 한국도 핵을 갖겠다고 할 것이다. 결국 북한의 상대적 우위는 없어지게 된다. 경쟁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경제력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이 공개적으로는 핵보유국을 지향할 수 있다. 이는 고도의 협상카드다. 또 북한 주민들에게도 핵보유국의 지위를 놓지 않을 것이라고 교육시킬 것이다.
이것 역시 상대를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여야 한다는 전략에 따른 것이다. 그래야 협상카드의 값이 올라가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북한의 핵보유국 전략은 여러 부작용이 예상되고 군사적으로 열세가 되는 자충수라는 점에서 진짜 의도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바로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중국이 움직이려면 미국이 먼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등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쉽게 만날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나서야 할 때다.
정부가 피에스아이에 공식 참여를 발표했는데, 뒷감당을 하려면 미국과 긴밀하게 대화를 통해 미국이 빨리 북한에 대화 메시지를 줄 수 있도록 미국을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외교를 해야 한다. ■ PSI 참여 선언은 정부의 역할 포기 선언
지금은 과거 상황과 다르다. 북한이 실질적인 핵보유 국가로 가면, 그것은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의 질적 성격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북관계는 냉전적 대립이 장기화될 것이며, 동북아의 군비경쟁 구도가 가속화될 것이다. 그것은 한국이 원치 않는 구도이다.
어떻게 막을 것인가? 지금 필요한 것은 해법을 제시하는 일이다. 이명박 정부가 효과적인 대응책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북한의 핵보유를 방관한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제재는 가능성이 낮고 효과적이지 않다. 20년간의 북핵 역사에서 제재는 효과가 있었는가? 오히려 북한의 핵 능력을 가속화시켰다. 북한의 대외무역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이 실질적으로 동참하지 않는 제재란 효과가 없다.
한국의 피에스아이 전면참여는 남북관계를 닫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보유로 가는 중대한 역사적 갈림길에서 한국은 스스로 역할을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차단했다. 한반도의 군사적 충돌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안보불안은 어려운 한국경제에 직격탄이 될 것이다.
■ 북에 진정성 보이고 더이상 자극 말아야
피에스아이 참여 발표는 정부가 ‘빈말하지 않는다’는 의지를 안팎에 보여준 측면은 있으나, 한반도 위기 관리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정부 논리가 상황에 따라 왔다갔다 했다. 피에스아이는 북한을 겨냥한 게 아니라고 해놓고 북한이 2차 핵실험한 다음날 바로 참여 발표를 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 대화 단절되고 신뢰 형성도 없는 상태에서 북한이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반발해온 피에스아이 참여 발표는 도리어 북한의 행동을 재촉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남북관계 악화 수단, 북-미 관계 악화수단을 다 갖고 있다. 북한은 피에스아이 참여에 반발해 서해 북방한계선(NLL), 군사분계선에서의 무력시위, 개성공단 전면 단절, 그나마 남북을 이어주던 유일한 통신수단인 군사통신선 차단 등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또 북한은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조기 시험발사해 한반도 위기를 더욱 고조시킬 수도 있다. 피에스아이 참여가 도리어 북한한테 발사 빌미가 될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에 대한 의지, 전략이 있다면 북한에 대해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진정성을 바탕으로 한 남북 대화 복원이 상황 악화 방지의 핵심이다. 위기 관리의 유일한 수단이 대화이고, 대화하려면 상대방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훈 이용인 권혁철 기자 nomad@hani.co.kr
미국·중국·일본의 전문가들은 북한의 2차 핵실험이 북한 내부의 불안한 정세를 반영한다고 분석한다. 상황을 더이상 악화시키지 않으려면,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과 한국 정부의 태도 변화, 비핵화를 향한 단호하지만 꾸준한 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 미|핵포기 없으면 지원없다 분명히 해야
스캇 스나이더 아시아재단 한미정책센터 소장(왼쪽) 이번 북한 핵실험의 일차적 대상은 국내 정치다. 25일 핵실험 직후 북한의 성명은 외세가 북한에 개입하거나 안정을 깨뜨리기 위해 승계문제를 이용하려 한다는 불안감을 드러냈다. 이는 오바마 행정부에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상황을 더이상 악화시키지 않고 북한이 2차 핵실험에 상응하는 결과를 맞도록 하면서, 내부 정치를 통제하기 위해 외부에 대한 적대감을 극대화하려는 북한 지도부와 효과적으로 대화에 나설 수 있느냐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이 북한에 대한 지렛대를 사용하게 해야 한다. 북한의 핵실험은 일본내 핵무장 논란을 불러오는 등 중국에 전략적 딜레마를 안겨주고 있다. 즉, 중국은 지역 불안정을 고조시켜 중국의 이익을 위험에 빠뜨리는 북한에 대한 단기적 지지와, 핵비확산 규칙을 유지하고 한반도에서 불안정 요인을 제거해야 하는 장기적 필요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데이비드 스트로브 스탠퍼드대 한국학센터 부소장 오바마 행정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강력한 조처를 추구해 나갈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북한에 강력한 압박을 행사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중국의 한반도 정책의 최우선 수위는 한반도에서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며, 두번째는 북한을 완충국으로 유지하는 것, 세번째가 북한의 핵 포기를 설득하는 것이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보유를 절대 용납할 수 없으며, 핵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는 한 국제적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 일|무력해결땐 파멸, 대화의 길밖에 없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왼쪽) 북한 내부적으로 김정일 체제가 상당히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볼 때 자신의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후계자 문제가 나오는 것은 굉장이 위험한 상황이다. 그래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고 인공위성을 발사했다. 이것이 대내외적으로 인정받으면 협상에 나서려 했으나 여의치 않자 2차 핵실험까지 강행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일부 강경파들은 ‘적기지 공격론’ 등 강경론을 펼치고 있으나 무력 해결방식은 파멸을 부를 뿐이다. 일본 정부는 강경한 대북 제재를 주도해왔으나 북한에 대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 다시 증명됐다. 미국은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길밖에 없다.
이소자키 아쓰히토 게이오대 교수 이번 핵실험은 국내용인 듯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여름 쓰러진 이후 후계문제와 체제 결속문제가 부각됐다. 3년 뒤면 김 위원장이 70살이 되는 시점에서 후계자가 핵실험을 주도하고 군부는 미국을 상대로 핵무기로 맞설 수 있다는 내부적 메시지를 발령한 것이다. 그러나 1차 핵실험 때처럼 국제사회의 양보를 얻어내는 벼랑끝 전술은 통용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6자회담도 당분간 어렵다. 북한은 이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한국 쪽에 접근할 가능성도 있다.
■ 중| 한·미 대북정책에 대한 불만 겨냥한듯
류장융 칭화대 국제문제연구소 교수(왼쪽) 북한의 2차 핵실험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제3차 북핵 위기가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북한의 핵실험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향한 것일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과거 노무현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폐기함으로써 한반도에 다시 긴장을 불러왔다. 북한은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정부에 대해서도 실망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오바마 정부와 직접대화를 통해 새로운 안전보장을 기대했으나, 오바마 정부는 중동 안보와 금융 위기에 치중하느라 북한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스인훙 인민대 국제관계원 교수 북한은 핵실험을 통해 강성대국의 위세를 보임으로써 인민의 사기를 북돋우고, 최고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을 강화하려 했을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은 결과적으로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정치적 곤경에 빠진 이명박 정부에 탈출구가 될 수 있다. 북한 핵실험이 한국 경제에 끼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다. 워싱턴 도쿄 베이징/
류재훈 김도형 유강문 특파원 hoonie@hani.co.kr
정부가 피에스아이에 공식 참여를 발표했는데, 뒷감당을 하려면 미국과 긴밀하게 대화를 통해 미국이 빨리 북한에 대화 메시지를 줄 수 있도록 미국을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외교를 해야 한다. ■ PSI 참여 선언은 정부의 역할 포기 선언
김연철 /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양무진 /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미국·중국·일본의 전문가들은 북한의 2차 핵실험이 북한 내부의 불안한 정세를 반영한다고 분석한다. 상황을 더이상 악화시키지 않으려면,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과 한국 정부의 태도 변화, 비핵화를 향한 단호하지만 꾸준한 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 미|핵포기 없으면 지원없다 분명히 해야
왼쪽부터 스캇 스나이더 아시아재단 한미정책센터소장, 데이비드 스트로브 스탠퍼드대 한국학센터부소장
왼쪽부터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이소자키 아쓰히토 게이오대 교수
왼쪽부터 류장융 칭화대 국제문제연구소 교수, 스인훙 인민대 국제관계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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