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압박’ 비칠라 조심조심
“말을 아낄 때다.”
6자회담 재개를 앞두고 핵심 이슈로 떠오른 방코델타아시아(BDA) 자금동결 일부해제 가능성에 대해, 한국 정부 고위 당국자들은 한결같이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문제가 기본적으로 북미 사이의 현안이어서 한국의 역할이 제한돼 있다, 더구나 미국이 “미국의 법 집행 문제”라고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을 공개적으로 압박하는 자세를 취할 경우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우려도 깔려 있다.
7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미국 정가에서는 베이징 북-중-미 회동 뒤 부시 행정부가 6자회담 재개 대가로 북한에 자금 동결을 풀어주는 뒷거래를 한 것 아닌가라고 해서 정치쟁점이 되고 있는 민감한 시점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부 장관은 1일 기자회견에서 “뒷거래는 없었다”고 해명까지 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차관이 1일 국정감사에서 대북 금융제재 문제가 진전을 보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전망했지만, 미 재무부가 아직 자금 일부를 풀어주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니다. 외교부는 유 차관이 미 재무부 조사·처리 과정의 일반적인 절차를 말한 것일 뿐이지, 이에 대해 미국으로부터 어떤 통보도 받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물론 한국 정부의 판단은 분명하다. 한국은 외교경로를 통해 미국에 “방코델타아시아 문제가 6자회담 개최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해결하는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을 여러 차례 전달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9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우회적이지만 강하게 조사의 조기 종결을 요청하기도 했다. 한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6자회담 재개와 진전에 최대 걸림돌이 돼 있는 이 문제에 대해 한국은 미국에 자극을 주는 역할을 하려고 꾸준히 노력해 왔고, 이 과정에서 불협화음설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제안하고 9월14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의 핵심 내용에도 금융제재 문제가 포함돼 있다. 6자회담이 진전을 보려면 북한이 요구하는 금융제재가 풀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미국이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포괄적 접근이란 이 금융제재 해제를 6자회담의 진전을 위해 미국과 북한이 각각 해야할 조처들의 프로세스와 결합시켜 포괄적으로 풀어가겠다는 뜻이다. 정부는 그런 점에서 북한이 6자회담 복귀를 결정한 것도 이런 포괄적 접근방안의 기본방향과 일치된다고 보고 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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