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유엔 사무총장인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1일 러시아를 방문해 모스크바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회담하고 있다. 앞서 반 장관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북핵 문제 등을 논의했다. 모스크바/AP 연합
합법·불법 판단…동결계좌 선별해제 전제조건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에 미묘한 변화의 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1일(현지시각) 미국이 “회담을 위한 회담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6자회담이 재개되면 북한은 동결된 해외은행 계좌에 접근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제는 북한이 달러 위조를 포함한 불법활동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슬슬 나오고 있는 ‘방코델타아시아(BDA) 동결계좌 50여개(2400만달러)에 대한 합법, 불법자금 계좌의 분리→합법 자금 계좌의 통보→중국 당국의 동결해제’라는 선별 처리 방식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이제 논의의 출발점에 선 데 불과하다고 본다. 무엇보다 미국이 BDA에 대한 조사를 종결한다는 입장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물론 미국의 변화는 감지된다. 대북금융제재를 총괄해온 스튜어트 레비 미 재무부 테러·금융정보 담당 차관은 핵실험 다음날인 지난달 10일만 해도 전미은행가협회 연설에서 북한의 자금은 불법, 합법 여부를 가리기 어렵기 때문에, 전세계 은행들은 북한과의 거래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비교할 때 불법·합법을 구분해 동결계좌를 선별처리한다는 것은 방침의 변화로 볼 수 있다. 실제로 딕 체니 부통령계의 강경파인 잭 크라우치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은 지난달 24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세미나에서 “북한이 앞으로 불법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서게 되면, (금융 제재가) 재평가돼야 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돈 오버도퍼 미국 존스홉킨스대 부설 한미연구소장이 미 재무부로부터 들었다면서 국내 언론에 밝혔듯이, 미국이 2400만달러 가운데 800만달러를 합법자금으로 중국 당국에 통보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는 북쪽에서 볼 때 너무나 당연한 조처이다. 오히려 ‘병주고 약주기’라고 할 수 있다. 액수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버도퍼 소장이 말하는 800만달러는 애초 불법자금이 아니었다. 600만달러는 평양에 있는 북한 유일의 외국계 합작회사인 대동신용은행의 자금이고, 나머지 200만달러는 북한에 담배를 팔아온 브리티시아메리칸토바코의 자금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무차별적으로 방코델타아시아의 북한 계좌 전부를 범죄시했다는 걸 보여준다. 나이젤 카위 대동신용은행장은 미국의 금융 제재는 합법적인 것과 불법적인 사업을 구분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고 비난했다. 실제 대동신용은행의 대주주인 홍콩계 투자 자문사인 고려아시아의 맥아스킬 사장은 대동신용은행이 외국인 대북 투자자의 은행이며 외환거래만 하는 은행인 만큼 미국의 제재를 받을 이유가 없다며 소송의사를 밝혀왔다.
합법적인 돈이면 당연히 풀어야 하는 것인데도 붙잡고 있다면 잘못된 것이다. 게다가 지난 9월 노무현 대통령이 폴슨 미 재무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한국검찰이 맡았다면 벌써 조사결과가 나왔을텐데…”라고 말했듯이, 미국은 지난 1년 동안 ‘조사 중’이라는 말만 해왔다. 미 재무부로서도 그동안의 조사에 대한 결과를 내놓아야할 상황이다. 이를 두고 미국이 북한의 핵폐기를 유도하기 위해 BDA 자금 해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너무 앞서나간 해석이다.
강태호 기자 kankan1@hani.co.kr
미국 및 국제사회의 대북 금융제재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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