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반기문 차기 유엔 사무총장
20일 낮 서울 도렴동 외교통상부 청사 17층 장관 접견실에서 〈한겨레〉와 만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겸 차기 유엔사무총장은 “손 씻을 시간도 없었다”고 말했다.
19일 새벽 4시부터 시작된 한-미, 한-미-일 외무장관회담 뒤 이날엔 줄줄이 언론과의 회견이 이어졌다.
“어마어마하게 무리한다”는 말 그대로다. 그러나 반 장관의 얼굴에는 피곤기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는 “다행히 타고난 건강이 받쳐줘서 버틴다”고 했다.
“총장 선출은 국민들의 힘”
한국의 외교장관이라는 짐 또한 만만치 않은데, 이 자리를 벗어나면서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더 큰 짐을 떠안게 됐다. 잠을 잘 못 자는 건 아닌지 물었더니 잘 잔다고 했다. 장관에서 사무총장으로 바뀐 건 유엔총회 수락연설 때도 실감 못했다. 유엔 총회에서도 그렇고 19일 공항으로 들어오는데 예우가 달라졌고 대통령 면담할 때도 ‘배려를 해주셔서’ 조금씩 느끼고 있다. 세계 주요 언론의 보도에서도 달라진 걸 많이 느낀다고 했다. 반 총장은 국민을 향한 한마디도 잊지 않았다. “제가 유엔사무총장으로 선출된 것은 바로 우리 국민들의 힘”이라며 “우리 국민들 스스로 자랑스러워하실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고 말했다. 일중독 강행군 “건강 타고나”
그는 인터뷰 직전 서울 프레스클럽에서 언론사 편집-보도국장과 점심 모임을 했다. 이 자리에서 반 총장은 북한에서는 자신의 유엔 사무총장 진출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유엔총회에서 박수로 차기 사무총장을 선출하자는 제안에 대해 어느 한나라라도 ‘투표하자’고 했으면 투표를 했어야 했다”며 이 때 북한도 만장일치 선출에 동의했다고 전했다. 또한 총회 이틀 전쯤 아시아 그룹 대표들을 만나 “이번 총회에서 박수로 선출되도록 도와달라”고 연설했을 때 북한쪽 대표도 참석했다고 한다.
“북핵특사 중립 인사로 파견”
반 차기 총장은 이어 앞으로 유엔 사무총장에 취임하면 북핵문제의 진전을 보아가면서 북한에 ‘북핵특사’를 파견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특사는 한국 사람도 미국 사람도 아닌 중립적인 인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반 차기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을 ‘1인1표의 권리를 갖는 192명 주주에게 봉사하는 최고경영자(CEO)’로 비유했다. 그는 사무총장이 “막강한 권력도, 돈도 없지만, 속세의 파워를 누르는 도덕적 권위(moral authority)와 그 누구든지 불러서 회의를 할 수 있는 소집권(convening power)” 때문에 매우 중차대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192명의 주주가 모두 한 나라의 주권을 대표한다. 하나 하나를 결코 무시할 수가 없는 어려움이 있다.
그는 코피 아난 현 사무총장이 들려준 충고로 앞으로의 각오를 대신했다. 아난 총장은 그에게 “트리그브 리에 제1대 사무총장은 총장직을 ‘모든 것이 불가능한 직업’(the most impossible job)이라고 했지만, 자신은 ‘모든 것이 가능한 직업’(the best possible job)이라고 생각한다”며 “항상 즐겁게 일하라”고 권했다고 한다.
“고 김선일씨 사건 뼈아파”
공직 생활 중 가장 어려웠던 순간을 물었다. “한-러 정상회담 때 성명에서 탄도탄요격미사일제한(ABM) 조약에 대한 언급이 한-미간에 파문을 일으키면서 차관에서 물러났을 때”를 꼽았다. 2001년 차관 재직 당시 한·러 정상회담 합의문에 부시 행정부가 폐기를 주장하고 있던 탄도탄요격미사일제한 조약의 ‘보존과 강화’를 골자로 하는 문장이 포함되어 버린 사건이다. 졸지에 ‘해고’ 당한 상황이라 당시 병원에 가려니 의료보험증이 없어서 난감했던 얘기가 직원들 사이에서 돌았다. ‘고 김선일씨 사망사건’도 뼈아픈 기억으로 꼽았다. 여론의 질타 속에 책임론이 제기됐고 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11월 인수작업 들어가
반 차기 총장은 끝으로 “우리 국민들도 이제 시각을 좀 더 세계적인 수준으로 높여서 보셨으면 한다”며 “이제 기준을 세계적인 기준(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올리자”는 말로 인터뷰를 맺었다.
그는 11월15일께 뉴욕으로 가 우리 외교부에서 파견될 직원 4명과 유엔 직원 4명으로 인수팀을 구성해 인수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유엔 사무총장 연봉은 2억2천만원 수준으로 우리 장관 급여의 약 3배 수준에 약간 못 미치며, 11명으로 이뤄진 유엔 경호팀의 경호를 받는다. 별도의 전용기는 없다.
대담 강태호 기자, 정리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한국의 외교장관이라는 짐 또한 만만치 않은데, 이 자리를 벗어나면서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더 큰 짐을 떠안게 됐다. 잠을 잘 못 자는 건 아닌지 물었더니 잘 잔다고 했다. 장관에서 사무총장으로 바뀐 건 유엔총회 수락연설 때도 실감 못했다. 유엔 총회에서도 그렇고 19일 공항으로 들어오는데 예우가 달라졌고 대통령 면담할 때도 ‘배려를 해주셔서’ 조금씩 느끼고 있다. 세계 주요 언론의 보도에서도 달라진 걸 많이 느낀다고 했다. 반 총장은 국민을 향한 한마디도 잊지 않았다. “제가 유엔사무총장으로 선출된 것은 바로 우리 국민들의 힘”이라며 “우리 국민들 스스로 자랑스러워하실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고 말했다. 일중독 강행군 “건강 타고나”
반기문 차기 유엔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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