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부시 대통령이 11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기자회견 도중 뭔가를 표현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워싱턴/AP 연합
부시 “북 정권 사라져야” 인식이 문제
“대화 나서면 곧 보상” 운신 폭 좁혀
“대화 나서면 곧 보상” 운신 폭 좁혀
[북한 핵실험 파장] 미, 직접대화 왜 거부하나
북한 핵실험 이후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북-미 직접대화 여론에 대한 조지 부시 행정부의 대응은 한결같다. 부시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각) 백악관 장미정원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외교적 해법을 강조하면서도 북-미 양자 직접대화에 대해선 다시 한번 거부의 뜻을 분명히했다. 전날에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똑같은 말을 했다.
지금 부시 행정부가 허용하는 양자 대화는 어디까지나 6자 회담 틀 속에서의 양자 대화를 말할 뿐이다. 북한이 6자 회담에 복귀할 것을 약속하면 그 틀 속에서는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는 게 부시 행정부가 보이는 유연함의 공식적인 한계다.
부시 행정부의 직접대화 거부는 기본적으로 북한 김정일 체제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에서 출발하고 있다. 대북정책에서 ‘빌 클린턴 전임 행정부가 추진한 정책은 모두 배제한다’(ABC)는 기조를 내세웠던 부시 행정부는 2000년 출범 직후 대북정책을 전면 재검토했다. 이 과정에서 클린턴 행정부 말기 이뤄졌던 북-미 기본 합의와 공동성명은 무시됐고, 대북 접촉도 전면 중단됐다. 부시 대통령은 김대중 당시 한국 정부의 햇볕정책에도 제동을 걸었다.
부시 대통령은 2002년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지칭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폭군’이라고 부른 적도 있다. 여기엔 북한 정권을 ‘전제주의적이고 비인간적인, 사라져야 할 정권’으로 보는 부시 대통령의 기본 인식이 깔렸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정권 타도’를 외치는 탈북자들을 백악관으로 불러 만나서 격려하는 건 같은 맥락에서다. 부시 대통령 대외정책 목표인 ‘전세계 민주주의 확산’의 핵심 대상이 북한인 것이다. 이런 기본적 인식이 북-미 직접대화를 가로막는 핵심적 이유라고 많은 한반도 전문가들은 말한다.
김정일 정권을 주민들을 굶주리게 하면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 ‘부도덕한 정권’이라고 보는 건, 대북정책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진 딕 체니 부통령을 비롯한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의 기본적인 대북관이기도 하다. 네오콘은 기본적으로 북한을 봉쇄하고 압박하면 김정일 체제가 내부에서 무너질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들이 2004년 북한 인권법안의 입법을 강력히 주장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2002년 어렵사리 성사된 제임스 켈리 당시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의 방북은 오히려 북한이 우라늄 핵개발을 몰래 하고 있다는 논란만 불러일으켰다. 이것은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과 직접협상을 통해 맺은 1994년 제네바 핵합의의 실패를 뜻한다고 부시 행정부는 주장했다. 부시 행정부 인사들은 양자 회담을 통해 포괄적인 대북 보상안이 제공됐지만 북한은 그것을 받기만 하고 약속을 준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양자 회담을 하면 북한은 또 미국을 속일 것이라는 게 부시 행정부의 직접 대화 거부 논리의 근거가 됐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좌우하는 네오콘들은 외교를 협상이 아니라 보상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나 북한, 이란 등 ‘악의 축’과의 직접 대화는 거부하고 있다. 체니 부통령의 한 측근은 “북한과의 직접 대화에 나서면 이란도 그걸 원할 것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hoonie@hani.co.kr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