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핵실험 예고 파장] 각국의 반응
당분간 미 지켜보기? 방송에선 이틀째 성명 반복보도 북한이 핵실험을 실제로 준비하고 있다는 징후는 아직 포착되지 않고 있다. 3일 외무성 성명 발표 후에도 북한이 먼저 행동에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이번 발표가 철저하게 미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대응을 본 다음 행보가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4일 “한-미 정보망을 동원해 대북 감시태세를 강화하고 있으나 특이 동향은 없다”며 “지난 8월초 외신이 보도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의) 핵실험 징후도 (그 뒤) 별다른 게 포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북한은 3일에 이어 4일에도 외무성 설명을 반복해 보도하며 긴장을 통한 내부 체제 결속을 다지고 있다.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핵심 소식통은 “‘벼랑끝 전술’의 첫번째 원칙은 ‘단계적 압박’”이라며 “지난 6월1일 ‘부득불 강경조처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외무성 대변인 담화가 이번 벼랑끝 전술의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대응은 단계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핵실험 이전까지 3~4단계를 더 거칠 것”으로 봤다. 실제 북한은 2002년 10월 시작된 ‘제2차 북핵 위기’ 때도 ‘핵연료 제조공장 및 방사화학실험실 감시 봉인→감시카메라 제거→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 추방→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등 ‘잘게 쪼개는 벼랑끝 전략’을 구사해왔다. 예컨대 북한이 7월5일의 미사일 발사 때 함경북도 무수단리 발사대에 미사일을 올려놓고 시간을 끈 것처럼, 핵실험을 하더라도 이미 공개된 장소인 함북 길주 풍계리에서 핵실험을 위한 구체적 준비를 밟아갈 가능성이 있다. 물론 노출되지 않은 장소에서 핵실험을 준비할 수도 있지만, 그동안의 핵 보유국들의 행동에 비춰보면 비공개로 은밀히 실험을 하고 그 결과를 외부세계가 지진파 탐지 등으로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미국이 대화와 협상의 가능성 보다 제재쪽에 더 무게를 두는 쪽으로 움직인다면 북한도 그에 맞서 핵실험 준비의 구체적 과정으로 위협의 강도를 높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앞으로 핵보유국으로서 미국과 협상을 하겠다는 쪽으로 방침을 전환했다면 핵실험 시기는 보다 앞당겨지고, 실행으로 이어지는 단계는 더욱 축소될 수 있다. 강태호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외교기대 갈수록 흐릿 국무부 관계자 “강행하면 6자회담 끝” 북한 핵실험 계획 발표를 접한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는 3일(현지시각) 강력한 경고를 보내면서도 북한의 6자 회담 복귀를 촉구했다. 아직은 대화 기대를 완전히 접지 않겠다는 뜻이다. 전체적으로 미국 행정부의 분위기는 강경 쪽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한반도에 질적으로 다른 상황이 조성될 것”이라고 밝히는 등,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북한에 고강도 압박이 가해질 것임을 예고했다. 존 볼턴 유엔주재 미국대사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의 핵실험을 막기 위한 ‘예방 외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핵실험 강행으로 외교의 실패가 확인되는 순간 미국의 대응은 달라지게 된다는 경고다. 6자 회담이 북핵 문제 해결의 최선의 방책이라는 부시 행정부의 공식적인 태도는 변함이 없지만, 외교적 해결에 거는 기대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국무부의 한 관계자는 “볼턴 대사가 아직까지 ‘예방 외교’를 언급한 데 주목해 달라”며 “만약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한국 주도로 논의 중인 ‘공동의 포괄적 접근’은 없던 얘기가 될 것이고 6자 회담은 사실상 끝나게 될 것”이라고 난감한 심경을 밝혔다. 워싱턴의 한 한반도 전문가도 “미국은 6자 회담이 끝났다는 발표는 하지 않겠지만, 부시 행정부의 나머지 2년은 강력한 대북 압박과 강경 대응의 외길 수순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첫 단계는 유엔헌장 7장을 원용한 매우 강력한 대북 결의안의 채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부시 행정부는 이를 무기로 그동안 미뤄왔던 대북제재 발표와 함께 관련국들의 동참을 강도 높게 촉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미국 의회가 지난달 29일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고 대북협상을 지휘할 ‘대북정책조정관’을 임명하도록 하는 내용의 ‘2007회계년도 국방수권법안’을 통과시킴에 따라, 부시 행정부의 강경 일변도에 제동이 걸릴 여지도 생겼다. 이 법안은 북한과의 직접대화를 거부한 행정부의 대북 ‘무시’ 정책에 대한 의회의 불신을 반영한 법안이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가 강력한 대북 제재를 통한 북한 고립화 이외에 군사적 수단을 사용할 가능성도 낮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더 중요한 현안인 이라크 사태와 이란 핵에 발목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hoonie@hani.co.kr
일, 수위 고민
러 “미-북 대화” 북한의 핵실험 선언은 중국과 일본, 러시아에도 달갑지 않은 숙제를 안겼다. 중국, 연거푸 뒤통수 맞은 셈=지난 1일 중국 정부 수립 기념일을 전후해 북-중 관계 복원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던 중국으로선 또다시 체면을 깎인 셈이 됐다. 중국은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자 유엔 대북 결의안에 찬성함으로써 불쾌감을 드러냈으나, 최근 북한과의 우호관계 회복에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북한의 핵실험 선언은 이런 중국의 기대에 반하는 것이다. 중국 외교부는 4일 북한에 자제를 촉구했다. 류젠차오 외교부 대변인은 성명을 내어, “우리는 북한 쪽이 핵실험 문제에서 반드시 냉정함과 자제심을 유지할 것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류 대변인은 관련국들에도 “오로지 대화와 협상을 통해 피차간의 관심사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길 바란다”며 긴장을 격화시키는 행동을 피해줄 것을 당부했다.
생각달라 논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4일 오전(한국시각 4일 밤) 북한 핵실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회의를 열었다. 미국과 일본은 안보리 의장성명 채택을 추진 중이지만, 중국이 반대하고 있어 언제 채택할지는 불투명하다. 미국을 방문한 고이케 유리코 일본 총리 보좌관(국가안보 담당)은 3일(미국 현지시각) 스티븐 해들리 미국 국가안보보좌관과 만나, 북한의 핵실험 저지를 위해 우선 실험 자제를 강력히 촉구하는 안보리 의장성명을 채택할 수 있도록 각국과 연계해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4일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우리 정부의 한 당국자도 “안보리 차원에서 대북 경고 메시지를 밝힐 수 있다”고 말해, 의장성명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당국자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기 전까지 구체적 내용이 있는 조처는 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은 안보리 의장성명에 그치지 않고 북한 핵실험 이후까지 내다보는 장기적인 대북 압박전략을 짜야 한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존 볼턴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3일 “의례적으로 평양을 비난하는 식의 반사적인 대응을 하기보다는 (북한) ‘압박전략’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며, 강하게 북한을 압박하는 ‘예방외교’를 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을 자극하기보다는 6자 회담으로 나오도록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데 아직 강조점을 두고 있다. 왕광야 유엔 주재 중국대사는 “이것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모든 당사자들이 자제력을 발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미국·일본의 섣부른 제재 논의를 반대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는 이어 “북핵 문제를 풀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안은 여전히 6자 회담”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성명을 통해 북한의 핵실험 계획에 강한 우려를 표시하면서 “북한 정부가 극도의 자제력을 발휘해줄 것”을 요청했다. 박찬수 기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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