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면
전직 경찰총수 전력 도마에
전직 경찰총수 26명이 11일 내놓은 이른바 ‘비상시국선언문’은 극우단체의 성명서를 방불케 한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친북 반역세력이 나라의 근본을 뒤흔들고 있고, 한편으로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라는 말로 추진되고 있는 한미연합사 해체 기도가 우리 안보의 기둥을 허물고 있다”며 한국이 “미증유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또 대북 문제에서도 전략적 상호주의로 전환하고 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과거사 정리, 반시장 경제정책 등도 국가정체성 수호와 시장 경제 원칙에 따라 대처해야 한다는 주문을 내놓았다. 전형적인 보수·우익 세력의 주장이다.
이들의 집단 행동에 대해 현직 경찰 간부들은 비판적 의견을 밝혔다. 이택순 경찰청장은 이날 오전 간담회에서 “보도와 일반적 발표 내용 등을 심층 검토하지 않고 단체로 (의견을) 표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총수들에게는 기대하는 바가 있고 총수들의 행동과 표현에는 이 사회의 가치관과 역사 변화도 고찰하는 고민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일선의 한 경감도 “전시가 되면 경찰의 작전권이 군으로 넘어가니 전직 경찰 총수들이 이 사안을 놓고 이야기할 수는 있다”면서도 “그들이 민생 치안이나 수사권 조정 문제 등에 대해서도 이렇게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이들의 행적도 도마 위에 올랐다. 박일룡 전 청장은 안기부 차장 시절 저지른 ‘북풍사건’으로 대통령 선거에 개입했다가 구속된 전력이 있다. 안보를 정치목적에 이용한 대표적 사례의 당사자이다. 강민창씨 역시 1987년 6·10 항쟁을 촉발시킨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때 치안본부장으로 범인 은폐·조작 혐의로 구속되는 등 안보를 명분으로 반인권 행위를 저지른 전력이 있다.
이밖에 김화남 염보현 이무영 이인섭씨 등 상당수가 각종 비리 혐의로 구속되거나 형사처벌된 적이 있어 이들의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지 의문이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