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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딱 하루만 쉬는 북한의 추석…한때 금지됐다 1988년에 부활

등록 2023-09-28 09:00수정 2023-09-28 12:13

북에선 1988년까지 ‘금지된 명절’
사회주의 몰락 이후 중요성 부각
지난 2018년 9월 평양시민들이 출근길을 서두르고 있다. 김정효 기자
지난 2018년 9월 평양시민들이 출근길을 서두르고 있다. 김정효 기자

‘민족 대명절’인 추석, 북한 사람들은 어떻게 쇨까요? 추석 앞뒤로 최소 사흘을 쉬는 남쪽과 달리 북쪽은 음력 8월15일 단 하루만 휴일이지만, 친척들과 함께 성묘와 벌초를 하고 음식을 나눠 먹는 풍습은 비슷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북한이 처음부터 추석을 ‘민족명절’로 삼았던 것은 아닙니다.

 ‘금지된 명절’ 추석…1988년에야 부활

한동안 북한에서 추석은 ‘금지된 명절’이었습니다. 북한은 1948년 정부 수립 직후부터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어긋난다며 추석을 비롯한 민속명절을 ‘규제’했고, 급기야 1967년에는 “봉건 잔재를 뿌리 뽑아야 한다”며 추석 등 민속명절을 ‘폐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고유의 전통 명절은 농경 문화의 일환이라 노동자 중심의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 불필요하다고 본 것입니다.

양력설만을 민족명절로 인정하던 북한의 태도는 1980년대 후반, 사회주의가 몰락하면서 본격적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주의를 대체할 지배 담론이 필요해지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조선민족제일주의’를 내세웠습니다. ‘민족’의 이름으로 독자 생존해보겠다는 것이지요. 북한은 1988년 추석부터 시작해 음력설, 한식, 단오를 차례로 부활시켜 4대 명절로 지정했습니다. 북한이 당시 남쪽 정부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등 국외 동포를 대상으로 한 ‘추석 성묘 사업’을 의식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1990년대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고 북한이 고난의 행군 시기에 들어서면서 북한은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명절에 한복을 입고 전통 음식을 먹고 민속놀이를 하는 것을 장려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추석이 설과 함께 북한의 ‘2대 민속명절’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남쪽과 달리 인구 이동이 활발하지 않은 데다 딱 하루만 쉬는 탓에 ‘민족대이동’ 현상은 찾아볼 수 없지만, 평양과 일부 대도시에서는 성묘 버스를 배차하기도 한다네요.

물론 여전히 북한에서는 추석이 ‘최대 명절’은 아닙니다.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인 ‘광명성절’을 더 큰 명절로 칩니다. 심지어 태양절과 광명성절에는 이틀간 연휴를 꼬박 보장받지만, 추석에는 당일은 쉬되 추석 앞뒤 일요일에 정상 근무를 하는 ‘대휴제도’를 채택하고 있다고 합니다.

 추석보다 중하다는 ‘단오’의 기구한 운명

추석이 제아무리 북한에서 규제와 금지를 넘어 민족성 고취의 도구로 이용되었다 하더라도 단오의 운명보다 기구하지는 않을 겁니다. 사실 논농사보다 밭농사를 주로 짓는 이북 지역은 오래전부터 보리 추수가 끝날 즈음의 단오를 추석보다 더 중시해왔습니다. 1920년대 신문을 살펴보면 “명절놀이로 조선에서 가장 유명한 평양의 단오”(조선일보 1925년 6월17일자)를 구경하기 위해 서울 사람들이 관광단을 꾸릴 정도였지요.

1925년 6월17일자 조선일보 지면에는 조선일보가 경성여행안내사와 함께 평양단오탐승단을 모집하기 시작하자 참가신청이 쇄도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1925년 6월17일자 조선일보 지면에는 조선일보가 경성여행안내사와 함께 평양단오탐승단을 모집하기 시작하자 참가신청이 쇄도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이런 단오는 1967년 추석과 함께 ‘봉건 잔재’로 낙인 찍혔다가 1989년 다시 ‘전통명절’이 되었고, 2005년에는 ‘외래문화’라며 재금지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조선민족제일주의에 힘입어 추석과 함께 복원됐던 단오는 왜 다시 사라진 것일까요? 2005년 단오가 공식 명절에서 제외될 때 북한은 명확한 사유를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전문가들은 2005년 우리나라의 강릉단오제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중국과 ‘원조논쟁’이 벌어진 뒤 북한이 자연스레 단오를 지운 것으로 추정합니다.

2010년대부터는 ‘단오 몰아내기’가 보다 표면화됩니다. 2017년에는 북한의 지역기관지인 양강일보에 단오 명절을 지내다 적발된 사례가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이 기사는 “김형직군 라죽협동농장의 한 농장원이 단옷날에 조상 묘에 제사를 지낸 후 술을 마시고 출근까지 하지 않았다”며 “단오를 쇠는 것은 우리 사회주의제도를 전복하려고 미쳐 날뛰는 적들을 도와주는 이적행위”라고까지 표현합니다.

북한은 본래 단오 때 치르던 씨름대회도 추석으로 옮겨 개최하고, 성묘는 추석 때 하도록 권장하는 등 단오를 추석으로 흡수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양강일보 기사를 보면 단오가 공식적인 명절의 지위를 잃었음에도 북한 주민들은 여전히 단오를 놓지 못한 모양입니다.

북한이 단오를 공식 명절에서 배제하기 전인 2005년 6월22일 단오를 맞이해 평양시내의 공원에서 탈놀이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평양 조선중앙통신
북한이 단오를 공식 명절에서 배제하기 전인 2005년 6월22일 단오를 맞이해 평양시내의 공원에서 탈놀이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평양 조선중앙통신

없앤다고 없어지지 않는 명절 풍속

북한은 추석을 정치적으로 재구성하려 계속 시도해왔습니다. 60년대에는 추석을 구습 취급하고 성묘를 금지하다가 이제는 추석을 단오의 풍습까지 얹어 민족 총화의 명절로 내세우고 있지요. 이는 남쪽에서 ‘음력설’(구정)이 겪은 일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남쪽에서 음력설이 그랬듯 북쪽에서도 추석은 살아남았습니다.

특히 매장문화가 보편화한 북한 주민들에게 조상 묘를 관리하고 제사를 지내는 일의 중요성은 쉽게 사라질 수 없었죠. 추석이 공식 명절로 복권된 1986년 이전에도 성묘가 암묵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명절 풍속을 없애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북한은 1972년에는 추석 성묘를 허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때도 허례허식으로 음식을 낭비하지 말라며 제사상 차리기는 제한하고 헌화와 묵념을 권장했다는데, 실제 북한 주민들의 조상의례 관습을 바꿔놓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2020년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북한 세시풍속의 변화’ 보고서는 “(성묘는) 봉건적 유습으로 제한되어 비사회주의적 생활양식으로 규정되었지만 1970년대 이미 비공식적으로 허용될 정도로 막을 수 없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사회주의 생활양식으로 표명되는 근대적 계몽이 북한 주민들의 조상의례 관습을 막아내지 못한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또 “일련의 혼란스러운 세시 정책은 사회주의 북한이 민속에 대해 가지는 양면적 가치 부여 방식과 연계가 되어있다. 민속이 민족적이면서 동시에 사회주의적이어야 한다는 정책적 이상으로 인해 민속에 대한 일관된 태도를 가지지 못한 점에서 정책 혼란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참고자료 : “북한 세시풍속의 변화: 문헌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2020년 통일기반구축사업 결과보고서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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