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난 5월31일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실은 위성운반로켓 ‘천리마 1형’의 발사 장면을 공개했고 2시간30분 만에 실패를 인정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말 북한은 첫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천리마 로켓’에 실어 발사했으나, 궤도 진입도 못 하고 실패로 끝났다. 북한이 주장하는 ‘인공지구위성’ 발사는 2017년 들어 성공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보다 ‘역사’가 깊다. 1998년 8월 말, 흔히 ‘대포동 1호’로 알려진 로켓 발사는 북한이 ‘광명성 1호’라고 명명한 최초의 위성 발사였다. 이후 탄도미사일 개발과 병행하여 2012년 4월과 12월, 2016년 2월에 ‘은하’ 로켓을 사용하여 위성 발사를 시도했고, 마지막 두번은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 ‘성공’이라는 것이 100㎏ 정도의 소형 물체를 지구궤도에 띄웠을 뿐 위성으로서의 기능은 전혀 못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의 위성 발사를 ‘도발’로 규정하고 규탄하는 근거는, 2009년 5월 북한의 2차 핵시험을 계기로 6월에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 1874호’다. 결의안은 북한에 “더 이상의 어떠한 핵시험 또는 탄도미사일 기술을 사용한 어떠한 발사도 수행하지 말 것을 요구(demand)”했으며, 동일한 문구가 이후 채택된 모든 안보리 결의안에 빠짐없이 명기됐다. 탄도미사일의 추진 엔진과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우주로켓은 거의 같으므로 이 결의안을 따른다면 ‘평화적 목적’의 우주개발도 불가능하다. 물론 북한이 이를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북한 국가우주개발국은 지난 5월 정찰위성 발사 실패를 즉각 대외적으로 인정했고, ‘친절하게’ 주요 기술적 실패 원인을 밝히면서 빠른 시일 내에 재발사할 것을 예고했다. 북한은 준비되는 즉시 다시 인공위성을 발사할 것이고, 이를 막을 방법도 선제타격이나 요격 등 ‘전쟁 행위’ 외에는 없다. 따라서 북한의 정찰위성 보유가 기술적·군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찬찬히 짚어보는 것이 비난과 규탄만 반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 것이다.
북한은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서 ‘국방과학발전 및 무기체계개발 5개년 계획’을 천명했다. 핵심 내용은 핵무기와 운반수단을 증강하면서 다양화하는 것이고, 정찰위성의 개발도 여기에 포함됐다. 대체로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아직 대외적으로 진전 상황이 알려지지 않았던 핵추진잠수함과 정찰위성 중 후자가 먼저 공개된 것이다.
군사정찰위성을 운용하면 북한은 원자(핵분열)탄과 수소(핵융합)탄, 그리고 인공위성으로 구성된 ‘양탄일성’(兩彈一星)을 보유한 국가가 될 것이다. 북한은 필요한 전략무기를 개발할 때, 일단 기본적인 ‘모양새’를 갖춘 무기를 대내외적으로 선보이면서 ‘성공’이나 ‘완성’을 주장한 뒤 시간을 두고 ‘완성도’를 높여 가는 방식을 채택해왔다.
제대로 된 정찰위성의 발사에는 북한이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보유하고 있는 아이시비엠이나 과거에 쏘아 올린 우주발사체에 비해 더 높은 수준의 기술이 필요하다. 정찰위성은 지구와 가까운 200~700㎞ 고도의 저궤도에서 운용하며, 지구를 공전하기 위해 최소한 초속 8㎞ 정도의 속도(임계속도)가 나야 한다. 임계속도의 인공위성은 약 90분에 한번씩 지구를 공전한다. 탑재체의 무게가 커지면 그에 따라 로켓의 추력도 커져야 하므로 과거 은하 로켓보다 천리마 로켓은 2단과 3단에서 상당한 추가적 추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더욱이 정찰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최적의 궤도에 정확히 진입하는 것도 기술적으로 쉽지 않은 도전이다. 정찰위성의 성능은 먼저 카메라 해상도 면에서 2022년 12월 북한이 공개한 ‘시험품’의 해상도가 20m 수준에 불과한 점을 참고하면, 군사적 용도(1m 이내)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추정된다. 기타 위성과 기지국 사이의 통신, 위성의 전력 공급과 운행 제어 등과 관련된 고난도 기술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북한이 재발사에 성공하더라도 그것은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한반도 지역을 지속적으로 정찰하기 위해서는 지구의 자전을 고려해 수개의 위성을 각기 다른 위도와 경도에 적절히 배치해야 한다. 또한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은 지난 4월18일 우주개발국을 방문해 군사정찰뿐 아니라 기상관측, 지구관측, 통신 등 다양한 목적의 위성도 발사할 것을 지시했다. 북한이 인공위성 능력을 보유한다면 한반도 군사 정세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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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상호 감시 체계로 전쟁 오판 방지·군축 가능성도
가장 직접적인 군사적 의미로서 북한의 정보 능력은 한 차원 도약할 것이다. 북한은 정찰용 항공기나 위성이 없었기 때문에 남한군과 주한미군에 대한 정보 수집은 주로 공개 정보에 의존했다. 다수의 저궤도 정찰위성에 높은 해상도의 광학카메라, 합성 개구 레이더(SAR), 적외선 탐지기 등 상당히 보편화된(물론 자력으로 확보하기에는 여전히 어려운) 장비들을 장착한다면, 한반도 주변과 오키나와, 대만, 괌 등 서태평양 지역에 배치된 군사장비와 부대의 위치 및 활동에 대한 정밀한 정보를 얻게 된다. 이는 전쟁 억제라는 전략적 차원뿐 아니라, 군사적 표적지정(타기팅)과 공격이라는 작전적 차원에서도 질적인 변화라 할 만하다.
중장기적으로 북한의 인공위성 능력이 고도로 발달하게 되면 ‘우주전쟁’의 가능성도 우려해야 한다. 우주전은 우주 공간을 지상작전의 지원을 위해 활용하는 ‘군사화’와 무기를 궤도상에 배치하는 ‘무기화’로 나눌 수 있다. 군사정찰위성의 운용이나 미사일방어는 군사화에 속하지만 무기화는 국제법적으로 금지돼 있고, 아직 공식적으로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나 핵무기를 탑재한 인공위성이나 적국의 위성을 요격할 수 있는 ‘킬러 위성’은 냉전 시기부터 이미 미국과 소련이 극비리에 개발했으며 중국도 최근에 킬러 위성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공위성은 궤도와 위치가 ‘물리학적으로’ 정확히 공개돼 있고 완전 무방비 상태이므로, 만일 킬러 위성이 사용된다면 걷잡을 수 없는 ‘상호 확증 파괴’가 일어날 것이다. 북한 역시 우주전쟁의 ‘억제’를 위해 필요한 대비책을 강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로서는 희망사항에 불과하지만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보유가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에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동북아의 모든 나라가 상호 정찰과 감시 능력을 보유하면 오히려 역내에서 오판에 의한 전쟁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비통제 이론에서 인용되는 진부한 문구 중 하나가 “믿되 검증하라”이다.
미국과 러시아 간의 핵군축 합의 이행의 검증에서 정찰위성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물론 양국 간 원활히 유지된 소통 채널의 토대 위에서였다. 북한의 정찰위성 역시 전쟁을 위해서가 아니라 상호 신뢰와 군축을 위한 감시와 검증에 기여하는 도구로 쓰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전 국방대 교수
노무현 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기획실 국방담당,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군사과학 기술의 이해> 등의 저자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