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근처에 있는 ‘히로시마 원폭 돔’의 모습. 1915년 상업전시관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돼 건물 형체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원폭 돔은 원폭의 참화와 함께 평화를 호소하는 상징으로 보존되고 있으며 199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히로시마/김소연 특파원
1945년 8월6일 일본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의 미국 책임을 묻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국내에서 열린 국제토론회에서 터져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해 한인 원자폭탄 피해자를 만나 위로했지만, 국내에서는 원자폭탄을 투하한 미국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이삼성 한림대 명예교수(정치학)는 지난 7일 경북 성주에서 열린 ‘한국 원폭 피해자를 원고로 하여 미국의 핵무기 투하의 책임을 묻는 국제 민중법정 1차 국제 토론회’에서 “많은 한국인들은 1945년 8월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가 정의로운 목표에 기여했기에 그것은 필요악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원폭 투하가) 한국의 독립을 앞당기고 식민지배로 인한 한국인의 고통을 끝냈다고 보는 인식이 한국인들에게는 가장 압도적”이라며 “절대 다수의 한국인들에게 그 자체로서 정의로운 가치들로 인식되는 이러한 결과들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비무장 민간인 수십만의 즉각적인 죽음과 또 다른 수십만의 피폭자로서의 고통스러운 삶, 한국인 5만 명의 희생과 고통을 상쇄할 수 있는 도덕적 근거가 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핵무기주의(nuclearism)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수십만 민간인의 희생이라는 거대한 반인도성을 신의 선물이자 축복으로 동일시하는 거대한 역설을 기반으로 탄생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오늘날의 세계, 동아시아, 그 중에서도 특히 한반도의 분열된 두 국가와 사회들을 가장 고통스럽게 옥죄고 있다고 주장했다. 핵무기주의는 핵무기를 인류의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협하는 괴물이 아니라 거악을 응징하고 안전을 지켜주는 평화의 무기로 간주하는 사고 방식이다.
이 교수는 “핵무기에 의존하는, 더욱이 핵무기의 선제사용을 노멀한 안보전략의 하나로 앞세우는 담론체계가 압도적이 되어가는 이 위험한 현실에 맞서는 우리의 노력에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폭 투하의 반인도성에 대한 인식의 공유는 필수적이고 소중한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가한 에릭 데이비드 벨기에 브뤼셀자유대학 국제공법 교수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투하가 1945년 당시에 △민간인 공격 △불필요한 고통을 야기하도록 고안된 무기 또는 물질의 사용 △인도법과 공공의 양심에 반하는 화학무기 및 전투수단의 사용을 금지하는 국제조약규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1945년 당시에는 전시에 핵무기 그 자체의 사용을 금지한 명시적 표현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매우 분명한 사실이지만 당시 시행 중인 조약국제법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국제토론회를 개최한 원폭국제민중법정 실행위원회는 1945년 히로시마·나가사키에 핵무기를 투하했던 미국의 책임을 묻는 국제 민중법정을 오는 2026년 미국 뉴욕에서 열 예정이다. 이를 위한 준비과정으로 국제토론회를 이번을 포함해 세차례 가량 개최할 예정이다.
권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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