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9월25일 새벽 “서북부 저수지 수중 발사장에서 전숙핵탄두 탑재를 모의한 탄도미사일 발사 훈련”을 했다며 10월10일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으로 공해한 사진.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 외무성은 한·미 군용기 240여대가 참가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스톰’(10월31일~11월4일)을 “침략형 전쟁연습”이라 비난하며 “미국이 계속 엄중한 군사적 도발을 가해오는 경우 보다 강화된 다음 단계 조치들을 고려하게 될 것”이라고 1일 밝혔다.
북한 외무성은 <조선중앙통신>(중통)으로 공개한 ‘대변인 담화’를 통해 “우리는 외부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국가의 자주권과 인민의 안전, 영토완정을 수호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들을 이행할 준비가 돼 있다”며 이렇게 밝혔다. 이어 “미국은 자기의 안보 이익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엄중한 사태의 발생을 바라지 않는다면 무익무효의 전쟁연습 소동을 당장 걷어치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 정부가 대규모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멈추지 않는다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나 7차 핵실험과 같은 한반도 정세에 중대 충격을 가할 ‘전략적 군사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경고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북한은 7차 핵실험 준비도 이미 마무리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은 지난 9월25일부터 10월28일까지 모두 10차례에 걸쳐 각종 미사일 따위를 발사하며 한반도 정세의 위기 지수를 끌어올리고 있다.
다만 “미국이 ‘연례적’ ‘방어적’ 훈련의 간판 밑에 우리를 군사적으로 자극하여 대응 조치를 유발시키고 우리에게 정세 격화의 책임을 전가하려고 획책하고 있다”는 북한 외무성의 언급도 아울러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당장 핵실험 등 행동에 나서기보다, 이번 담화에 대한 미국의 대응을 지켜보겠다는 뜻이 담겨 있을 수 있어서다.
북한 외무성은 한반도 정세를 “엄중한 강 대 강 대결 국면”이라고, 한반도는 “세계에서 군사적 긴장 도수가 가장 고조된 열점”이라고 규정했다. “미국과 남조선의 지속적인 무모한 군사적 움직임으로 하여 조선반도와 주변 지역 정세는 또다시 엄중한 강 대 강 대결 국면에 들어섰”으며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이 올해에 들어와 연중 매일과 같이 벌려놓고 있는 대규모 전쟁연습 소동으로 하여 조선반도는 세계에서 군사적 긴장 도수가 가장 고조된 열점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반대하는 미국의 핵전쟁 각본이 마지막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 외무성은 아울러 “대규모 상륙 훈련, ‘참수작전’과 같은 상대방의 영역과 종심을 점령하기 위한 침략전쟁연습을 벌려놓고 있는 미국이 우리의 자위적 군사적 대응에 대하여 정세를 긴장시킨다고 비난하는 것은 철저히 언어도단이며 적반하장”이라 주장했다. 이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인민군 부대들의 최근 군사훈련들이 미국과 남조선에 의해 조성된 불안정한 안보환경 속에서 진행되었다는 데 대해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고 덧붙였다. 9월 하순 이후 북쪽의 잇단 미사일 발사 등은 ‘방어적’ 훈련이라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한반도 긴장 고조의 원인이 마치 우리의 연례적·방어적 훈련 때문인 것으로 오도하고 있으나, 정부는 현 정세가 북한의 무모한 핵·미사일 개발에 따른 것임을 분명히 한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이번 외무성 담화는 한미연합공중훈련에 대한 강 대 강 맞대응의 군사적 조처를 예고하고 있다”며 “북한이 도발을 멈추고 우리가 제안한 담대한 구상에 호응해 나올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국민들은 윤석열 정부에 용감한 군사적 조치보다 안전한 평화적 조치를 요구하고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며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배가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문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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