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이뤄진 북-미 정상회담의 모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일대일 회담에 앞서 마주 앉아 있다. 하노이/AFP 연합뉴스
남북 정상이 문재인 대통령의 퇴임을 앞둔 4월20일과 22일에 친서를 교환했다. 친서를 먼저 보낸 문 대통령도, 답장을 보낸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숱한 회한이 들었을 것이다. 2018년에 ‘이게 실화냐’라는 탄성이 나올 정도로 황금기를 구가했던 남북관계는 2019년 상반기 침체기를 거쳐 그해 8월부터는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해왔다. 전두환 정권 이후 공식적인 남북대화가 가장 오랜 기간 중단된 것은 이러한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대화가 사라진 자리엔 극심한 군비경쟁과 북한의 막말에 가까운 대남 비난, 그리고 짙은 안개가 자욱한 한반도의 앞날이 똬리를 틀고 있다. 북한이 남한 대선과 정권 교체기에 각종 미사일을 시험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도 빛이 바랬다는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북한에 그토록 정성을 다했는데 북한이 어떻게 이렇게 나올 수 있냐는 푸념도 유행한다. 문재인 정부가 이토록 노력했는데 이 정도밖에 안 된다면 한반도 평화는 불가능한 것이라는 인식도 퍼지고 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정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것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하노이 노딜’이 중요한 원인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남북관계 악화는 그 이후에 벌어진 일들이 주되게 작용했다. 그리고 그 책임으로부터 문재인 정부도 자유로울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1차 북-미 정상회담 직후 중단을 선언했던 한-미 연합훈련이 하노이 노딜 직후 재개됐다. F-35 전투기를 비롯한 남한의 첨단 무기 도입도 본격화됐다. 이에 북한도 단거리 발사체 시험발사로 응수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반전이 일어났다. 김정은은 6월 초에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는 심정으로 트럼프에게 친서를 보냈고 남한 정부도 트럼프 방한 중에 남·북·미 정상들이 만나자고 미국에 제안했다. 트럼프도 트위터로 화답했다. 6월30일 판문점 번개팅은 이렇게 성사됐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는 한-미 연합훈련을 하지 않겠다고 거듭 약속했고 김정은은 북-미 실무회담 개최 동의로 화답했다. 그 이후 북한은 8월에 북-미 회담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8월 초에 남한의 국방부가 연합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또 5년간 290조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해 국방력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국방중기계획도 공개했다. 문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남북한이 평화경제를 실현해 일본을 따라잡자는 취지로 연설했다. 그러자 북한은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고 막말을 퍼부으면서 “남조선과 더 이상 상종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한-미 연합훈련 강행은 교착 상태에 빠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운명을 재촉하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가 사상 최대 규모의 군비증강 계획을 발표한 것 역시 2018년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단계적 군축” 추진과는 역행하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왜 그랬을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집착에 있었다. 이 조건을 충족하려면 연합훈련도 계속하고 국방력도 강화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후로도 이러한 상황은 계속되었다. 북한도 또다시 핵·미사일 증강에 박차를 가하면서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는 짙은 안개 속에 빠져들었다. 전작권 환수도 없었다.
‘하노이 노딜’의 충격파는 엄청난 것이었지만, 이를 알리바이처럼 남용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진영 논리를 떠나 문재인 정부의 공과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정책적·전략적 착오와 실패로부터 교훈을 추출할 때이다. 그래야 한반도 평화는 불가능하다는 체념을 딛고 새로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장 wooksi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