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손을 맞잡은 채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일과 21일 친서를 교환했다고 청와대와 <조선중앙통신>(중통)이 22일 이른 아침 발표했다.
북한의 <중통>은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는 지난 4월20일 문재인 대통령이 보내온 친서를 받으시고 4월21일 회답친서를 보내시었다”고 보도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도 이날 아침 춘추관 출입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통해 “남북 정상은 친서를 교환했으며 관련 내용은 오전 중으로 알려드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중통>은 “북남 수뇌분(남북 정상)들께서는 서로가 희망을 안고 진함(다함)없는 노력을 기울여나간다면 북남관계가 민족의 염원과 기대에 맞게 개선되고 발전하게 될 것이라는 데 견해를 같이 하시면서 호상(상호) 북과 남의 동포들에게 따뜻한 인사를 전하셨다”고 전했다. 남북 정상의 친서 교환은 “깊은 신뢰심의 표시”라고 <중통>은 의미를 부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친서에서 “그동안 어려운 상황에서도 북남 수뇌들이 손잡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북남 사이의 협력을 위해 노력해온 데 대하여 언급”하고 “퇴임 후에도 북남공동선언들이 통일의 밑거름이 되도록 마음을 함께할 의사를 피력하였다”고 <중통>은 보도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북남 수뇌들이 역사적인 공동선언들을 발표하고 온 민족에게 앞날에 대한 희망을 안겨 준 데 대해 회억(회고하여 기억)하시면서 임기 마지막까지 민족의 대의를 위해 마음써온 문재인 대통령의 고뇌와 노고에 대하여 높이 평가하시었다”고 <중통>은 전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친서 교환 사실이 공개 발표된 것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친서를 주고받은 2020년 9월 이후 19개월 만이다. 문 대통령은 2020년 9월8일자 친서에서 “8천만 동포의 생명과 안위를 지키는 것은 우리가 어떠한 도전과 난관 속에서도 반드시 지켜내야 할 가장 근본일 것”이라며 “동포로서 마음으로 함께 응원하고 함께 이겨낼 것”이라고 밝혔고, 김 위원장은 나흘 뒤인 2020년 9월12일자 친서에서 “오랜만에 나에게 와닿은 대통령의 친서를 읽으며 글줄마다 넘치는 진심어린 위로에 깊은 동포애를 느꼈습니다”라며 “보내주신 따뜻한 마음 감사히 받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이번 남북 정상의 친서 교환은 퇴임을 앞둔 문 대통령의 친서에 김 위원장이 화답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김 위원장의 화답은 “친서교환은 깊은 신뢰심의 표시”라는 <중통>의 의미 부여처럼, 재임 기간 세차례 정상회담을 함께한 문 대통령에 대한 예우의 성격이 강하다.
그럼에도 이번 친서 교환은 최근 북한의 잇단 미사일 시험발사 등으로 긴장된 한반도 정세에 비춰 남북관계에 ‘가뭄의 단비’로 여겨질 만한 의미심장한 상황 전개다. 특히 김 위원장이 “서로 노력을 기울여나간다면 북남관계가 개선되고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론적 언급일 수 있지만, 5월10일 출범을 앞둔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에 따라선 긴장 속 장기 교착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남북관계에 반전의 디딤돌이 될 수 있는 발언이어서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북남공동선언들이 통일의 밑거름이 되도록 마음을 함께할 의사를 피력했다”는 <중통> 전언도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 뒤 ‘전직 대통령 문재인’을 대북특사로 삼아 남북관계의 활로를 모색하려 한다면, 이를 김 위원장이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일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어서다.
다만 북쪽이 남북 정상의 친서 교환 사실을 대외용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으로만 보도하고, ‘인민 필독 매체’인 노동장 중앙위 기관지 <노동신문>엔 싣지 않은 사실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노동신문> 보도만을 기준으로 삼자면 북녘 인민들한테 현재의 남북관계는 서욱 국방부 장관을 “쓰레기·미친놈·대결광”이라 맹비난한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과 박정천 노동당 중앙위 비서의 담화의 연장선에 있는 셈이다. 논리적으로만 따지자면, 남쪽에서 새로 출범할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에 따라선 얼마든지 대남 강경 정책으로 돌아설 수 있는 것이다.
앞서 김여정 부부장이 지난 3일과 5일 발표한 담화를 통해 서욱 국방장관을 맹비난하면서도 비판의 화살을 문 대통령을 포함한 문재인 정부 전체로 넓히지 않은 대목은 다시 곱씹어 볼만하다. 김 부부장은 3일 담화에서 “남조선 국방부 장관”의 “‘선제타격’ 망발”을 문제 삼아 “위임에 따라” “남조선에 대한 많은 것을 재고할 것”이라고 밝혔고, 5일 담화에선 “남조선이 군사적 대결을 선택하는 상황이 온다면 부득이 우리의 핵 전투무력은 자기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게 될 것”이라거나 “우리는 전쟁을 반대한다” “서로 싸우지 말아야 할 같은 민족” 따위 강온 신호를 섞어 발신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