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오후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난 23일 ‘역대 합참의장 일동’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용산 집무실 이전이 안보태세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가운데 이상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고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역대 합참의장 11명이 지난 19일 “청와대 집무실 국방부 이전, 안보 공백이 우려된다”는 입장문을 낸 바 있는데, 불과 나흘 만에 입장이 완전히 바뀐 것처럼 보인다.
유심히 보면, 나흘 만에 내용뿐만 아니라 발표 명의도 바뀌었다. 지난 19일 입장문에는 역대 합참의장 11명의 이름이 모두 적혀 있는데, 지난 23일 입장문은 실명 없이 ‘역대 합참의장 일동’이라고만 적혀 있다. 국어사전에 ‘일동’은 “어떤 단체나 모임의 모든 사람”이라고 적혀 있다. 합참의장을 지낸 사람들 모두가 용산 이전에 협조, 동참하는 것일까.
<한겨레>와 통화한 역대 합참의장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용산 이전에 협조, 동참하겠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전히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적어도 ‘역대 합참의장 일동’이 협조·동참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용산 이전을 반대하는 한 인사는 “대통령이 국방부 청사를 사용하고 국방부가 합참 건물로 옮기면 적에게 정부와 군 지휘부를 동시에 타격할 수 있는 좋은 목표가 된다”고 걱정했다. 그는 국방부 청사를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하는 것은 우리 국격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용산 이전에 협조하고 말고 할 게 뭐 있느냐, 은퇴한 입장에서 현실 문제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인수위가 우리 말을 들을 것도 아니고. 인수위가 하면 하고, 말면 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합참의장들의 말을 종합하면, 지난 19일 입장문의 순수한 뜻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공감대가 있어, 지난 23일 ‘역대 합참의장 일동’ 명의 입장문이 다시 나왔다고 한다. 한 인사는 “군 원로들이 순수하게 군사적 관점에서 낸 지난 19일 입장을 한쪽에서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생각이 들어 입장문을 다시 내는 데 동의했다”고 말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입장문 정치적 악용에 대한 엄중 경고 및 중단 촉구’에 ‘역대 합참의장 일동’이 찬성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 정부는 안보 공백을 논할 자격이 없고 용산 집무실 이전에 적극 협조하고 동참할 것이란 지난 23일 입장문 내용에 대해서는 ‘일동’이 동의하지 않았다. 찬성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한 인사는 “그런 내용이 있느냐. 특별히 할 말이 없다”고 언급을 피했다.
한편 지난 22일 육해공군과 해병대의 예비역 장성들이 입장문을 내어, 청와대의 국방부 이전으로 인한 안보 공백은 없으며, 문재인 정부는 지난 5년 동안 안보를 도외시했다고 주장했다. 입장문에 참여한 예비역 장성이 1천여 명이고, 이 중 전직 국방장관과 합참의장, 참모총장 등 예비역 대장이 64명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1천여명 중 실명은 단 26명만 공개했다. 군 안팎에서는 ‘예비역 장성 1천여명이 실체가 있느냐’, ‘용산 주변에 유령 장성이 떠돈다’는 뒷말이 돌았다.
권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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