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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한반도 평화시계 ‘5년 전으로’…정권교체기 위기지수 상승

등록 2022-03-25 04:59수정 2022-03-25 07:03

북한이 동해상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장거리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한 24일 고공정찰기 U-2S가 경기도 평택시 주한미공군 오산기지로 착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동해상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장거리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한 24일 고공정찰기 U-2S가 경기도 평택시 주한미공군 오산기지로 착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반도 평화시계가 2017년 7~9월의 그 뜨겁고 위태롭던 ‘한반도 전쟁 위기’ 때로 빠르게 역회전하고 있다.

북한은 24일 오후 평양 순안 일대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고, 청와대는 즉각 “북한이 국제사회에 스스로 약속한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유예를 파기한 것”이라고 규정한 ‘정부 성명’을 발표했다.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는 2017년 11월29일 ‘화성-15형’ 시험발사와 함께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뒤로 1577일(4년3개월23일) 만이다.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와 한·미 정부의 “북의 모라토리엄 파기”(24일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 규정으로 2018년 4·27판문점선언과 6·12북미공동성명을 양대축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떠받쳐온 ‘2018년 한반도 잠정 평화체제’가 붕괴 국면에 들어섰다. 앞서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은 2018년 4월20일 노동당 중앙위 7기3차 전원회의에서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케트시험발사 중지”를 밝혔고, 이어진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새로운 조미관계 수립”,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약속했다. 이날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와 ‘모라토리엄 파기’로 이 합의의 핵심 기반이 심각하게 훼손된 것이다.

북은 최근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정찰위성 개발을 위한 중요 시험”이라고 하지만, 위성 발사용 장거리 로켓도 탄도미사일 기술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어떠한 발사”도 금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874호(2009년 6월12일) 위반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아울러 유엔 안보리가 결의 2087호(2013년 1월22일)에서 북의 핵시험·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땐 자동적으로 회의를 소집해 추가 제재에 나설 수 있는 ‘트리거 조항’을 도입했다. 한·미 북핵수석대표가 24일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직후 전화 협의를 통해 “유엔 안보리 차원의 조치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단합된 대응”을 다짐한 배경이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4월 중하순엔 한·미 연합군사연습이 예정돼 있다. 한·미 정부 당국과 전문가들은 북이 김일성 주석 탄생 110돌 기념일(태양절)인 4월15일 즈음 ‘정찰위성’ 발사 형식을 빌려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예견해온 터다. 한국의 정권 교체기인 3~5월 북의 전략적 군사행동과 한·미 등의 군사훈련 등이 맞물리며 ‘한반도 위기 지수’가 빠르게 높아질 위험이 높다.

통일외교안보 분야의 원로 인사는 “한반도 정세가 2017년 여름으로 되돌아가는 분위기”라며 “어쩌면 그때보다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2017년 여름 북은 화성-14형(7월4일, 7월28일)과 화성-12형(8월29일, 9월15일)을 잇달아 발사했고, 6차 핵시험(9월3일)까지 치달았다. 유엔 안보리는 북의 석탄·섬유·의류제품 수출을 전면 금지하고 원유·정제유 수출 총량제한제를 도입했다. 그해 8월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회견에서 “세계가 보지 못했던 화염과 분노에 북한이 직면할 것”이라고 하자, 다음날 북의 전략군 대변인이 “괌도 주변 포위사격 검토” 성명을 발표했고, 김정은 총비서는 2018년 1월1일 신년사에서 “핵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고 밝혔다. 이런 사정 탓에 2017년 여름은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가 전쟁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시기로 불린다.

북이 1577일 만에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라는 전략적 군사행동에 다시 나선 데에는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김정은 총비서의 전략적 판단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많다. 김정은 총비서는 지난 1월19일 노동당 중앙위 정치국 8기6차 회의에서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군사적 위협이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위험계선에 이르렀다”며 “(대미) 신뢰구축 조처들을 전면 재고하고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들을 재가동하는 문제를 신속히 검토해볼 데 대한 지시를 해당 부문에 포치(공지)”했다. 모라토리엄 파기를 예고한 셈이다. 하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일 의회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단 한차례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철군과 그 후폭풍,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란 핵협정 복원 등에 외교 자원을 쏟아부으며 북을 향해선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는 외교적 수사를 넘어선 ‘행동’에 나서지 않고 있다. 북한은 ‘우선 관심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전직 정부 고위관계자는 “김정은 위원장은 이미 행동에 돌입했는데, 한·미 양국 정부 모두 자기 문제로 효과적인 외교적 해법을 마련하지 못하는 처지”라며 “한·미가 상황을 안정시킬 외교적 해법을 찾지 못한다면 북이 대륙간탄도미사일 추가 발사는 물론 추가 핵시험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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