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욱 국방장관이 지난 2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영안실에서 공군 이아무개 중사를 추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추행을 당한 뒤 ‘극단적 선택’에 내몰렸던 이아무개 공군 중사가 사건 발생 이튿날부터 직속상관들의 은폐 시도에 절망해 삶에 대한 의욕을 잃었음을 암시하는 메모를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 중사가 애초 알려진 것과 달리 ‘사건 직후’부터 직속상관들의 대응에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27일 <한겨레> 취재를 모아 보면, 국방부 국방부 검찰단은 25일 열린 군검찰 수사심의위원회 4차 회의에서 이 중사가 성추행 피해 다음날인 3월3일 제20전투비행단 직속상관인 노아무개 상사와 면담 직후 자신의 심경을 남긴 휴대전화 메모를 공개했다. 이 메모엔 “조직이 날 버렸다. 내가 왜 가해자가 되는지 모르겠다. 더는 살 이유가 없다. 먼저 떠나게 돼 죄송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중사는 이어 같은 날 저녁 노아무개 준위와 식사 자리에서 또 한 번 ‘사건을 무마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노 준위도 노 상사와 똑같다”는 말로 큰 실망감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 당국자는 이에 대해 “수사심의위에서 나온 내용에 대한 공식 확인은 불가능하다.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그 안에서만 다뤄진 얘기라고 이해해주기 바란다”며 이날 심의에서 관련 논의가 이뤄졌음을 간접 시인했다. 또 다른 국방부 당국자도 “수사심의위에 참여한 한 위원이 언론에 관련 내용을 공개한 것으로 안다. 국방부 차원에서 공식 확인은 힘들다”고 말했다.
그동안 이 중사의 유족들은 제20비행단의 전직 상관들이 성추행 피해를 문제 삼으면 “함께 회식에 간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노 상사) “살면서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일”(노 준위)이라는 말로 사건을 없었던 일로 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해 왔다. 이번에 공개된 메모와 유족들의 주장을 묶어보면, 이 중사는 특히 “함께 회식에 간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며 피해자를 가해자 취급하려는 노 상사의 말에 “내가 왜 가해자가 되는지 모르겠다”며 큰 괴로움을 느낀 것으로 확인된다. 그동안 이 중사가 사건이 발생한 지 40여일이 흐른 4월15일 성고충 전문상담관에게 “자살하고 싶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사건 직후부터 극단적 선택을 고민할 만큼 큰 충격과 실망감을 느낀 정황도 알 수 있다.
한편, 국방부는 26일 전날 오후 2시부터 열린 제4차 군검찰 수사심의위원회를 통해 노 준위에 대해선 군인 등 강제추행죄 및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이후 특가법)상 보복협박죄 등으로 구속 기소, 노 상사에 대해선 특가법상 면담강요죄 등으로 구속 기소할 것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수사심의위는 또 노 상사의 일부 혐의에 대해선 특가법상 보복협박죄를 적용하도록 권고했다. 국방부는 “이를 존중해 처분하겠다”고 밝혔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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