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직무 배제 결정으로 출근하지 못했던 윤석열 검찰총장이 1일 오후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 총장은 서울행정법원의 집행정지 명령 효력 임시 중단 결정이 나오자마자 청사로 출근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2일 공석인 법무부 차관에 판사 출신 이용구 변호사를 내정했다. 빈자리를 채우는 통상적 인사가 아니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절차 진행에 방점이 찍힌 원포인트 인사다. 전임자인 고기영 차관은 윤 총장에 대한 징계에 반대하며 지난 1일 사퇴했다.
이에 맞서 윤 총장은 직무 복귀 이틀 만인 이날 오후 대전지검이 수사 중인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 사건의 피의자인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의 사전 구속영장 청구를 승인했다. 복귀하자마자 여권에 민감한 수사를 지휘해 윤 총장과 여권의 갈등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이날 오후 이용구 법무부 차관 내정 사실을 발표하며 “법률 전문성은 물론 법무부 업무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높아 검찰개혁 등 당면 현안을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해결하고 조직을 안정화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법무부 차관에 비검찰 출신이 등용된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이다. 이 내정자의 임기는 3일 시작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2일 법무부 차관에 이용구 변호사를 내정했다. 연합뉴스
이용구 차관 내정으로 윤 총장에 대한 징계위원회 심사는 예정대로 4일 열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징계위가 개최돼도 당일에 결론을 내릴 가능성은 낮다. 법원이 1일 윤 총장이 낸 직무정지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인데다, 같은 날 소집된 법무부 감찰위원회도 감찰 절차와 징계 청구에 문제가 있다고 결론 내린 만큼, 징계위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정당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아진 탓이다. 이에 따라 법무부는 징계위를 열더라도 속전속결식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윤 총장의 충분한 소명을 듣는 등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징계위를 2~3차례 추가로 열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문 대통령은 (징계위 결론이) 어디로 가는지에 관심이 없다”며 “차관 인사는 윤 총장 해임을 강행하겠다는 게 아니라, 징계위 소집이 예정돼 있으니 그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소명이 필요하다면 충분히 듣고, 결정을 내리는 시기도 충분히 늦출 수 있다. 문제가 생겼으니 나머지 절차라도 공정하게 가야 한다는 게 대통령의 뜻이다”라고 덧붙였다. 차관 임명을 ‘징계 강행’으로 단정짓지 말라는 얘기다.
징계위를 열더라도 이 차관 내정자가 징계위원장을 맡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징계위원의 한 명으로 표결에만 참여시키고, 회의 진행 등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에는 개입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차관이 위원장을 맡으면 ‘판사 출신인 추미애 측근이 징계를 주도한다’는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 징계위원장을 다른 사람으로 선임하라고 법무부 지시사항이 이미 내려간 상태”라고 전했다.
청와대의 이런 입장은 징계위의 결론이 어느 쪽으로 내려지든 그 여파가 문 대통령에게 미치는 상황은 피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윤 총장 징계에 부정적인 여론이 우세한 상황에서 해임 등 중징계가 내려질 경우, 자칫 정치적·도덕적 비난이 추미애 장관을 넘어 문 대통령에게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징계 청구가 부결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책임론이 번지면서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이 가속화되는 상황을 막으려면 정치적 책임은 어디까지나 징계를 주도한 추 장관이 져야 한다. 이는 ‘추미애-윤석열 갈등’ 국면에서 청와대와 문 대통령이 철저하게 침묵을 지켜온 것과 같은 맥락이다. 대통령의 침묵은 ‘징계에는 일절 개입하지 않았으니, 결론이 어떻게 나오든 내 책임은 없다’는 정치적 부재증명 차원의 계산된 행보였던 셈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가 언제 가이드라인 비슷한 것이라도 준 적이 있었느냐”며 “쉽게 말해서 (어떤 결론이 나오든) 우리는 무관한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친문계 핵심 의원도 “추미애 장관에게는 다른 장관들에게 볼 수 없는 장점이 있는데, 대통령 뒤에 숨지 않고 잘하든 못하든 자기가 책임지겠다는 자세”라며 “이번에도 (징계 요청 부결 같은) 최악의 결과가 나와도 당연히 추 장관이 감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구 내정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총장 지휘로 검찰 수사를 받아 낙마하는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조 전 장관의 측근 인사로 분류된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뒤 법무부가 ‘탈검찰화’를 내세우며 민간 전문가에게 문호를 개방할 때 핵심 보직인 법무실장을 맡았다.
한편, 윤 총장 쪽은 이날 4일로 예정된 법무부 징계위 기일을 변경해줄 것을 요구하는 신청서를 3일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완 서영지 김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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