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저도 개방 행사 열려
9월16일부터 1년 동안 시범개방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 이행 수순
30일 경상남도 저도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이 산책로 전망대를 둘러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권력자의 추억’이 ‘시민의 추억’으로 돌아온다.
저도는 거제도 옆에 붙은 남해의 작은 섬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돼지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예부터 동백과 해송이 아름다웠다.
이 섬이 유명세를 탄 건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2013년 취임 뒤 첫 여름휴가를 저도에서 보냈다. 당시 청와대는 해변가 모래밭에 허리를 숙여 ‘저도의 추억’이란 문구를 남긴 박 전 대통령 사진을 언론에 배포했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아버지와 함께 거닐던 곳에 대통령이 되어 돌아왔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3년 여름 휴가차 저도를 찾아, 모래사장에 ’저도의 추억’이라 쓴 사진.
그러나 ‘저도의 추억’ 이면에는 섬 주민들의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2년 저도를 대통령 여름별장(청해대)으로 공식 지정했다. 앞서 일제강점 말기에는 본토 방어를 위해 주둔한 일본군이 지하벙커를 설치했고, 광복 뒤에는 연합군이 이 시설물을 넘겨받아 사용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휴양지로 쓰인 1954년부터 섬에 살던 주민들이 쫓겨나기 시작했다. 섬이 대통령 별장지로 공식 지정된 뒤 청와대는 주민들의 논밭까지 수용해 골프장을 조성했다.
저도와 인근 지역 어민들은 대통령의 휴가기간은 물론 휴가가 끝나고도 한동안 어장에 배를 띄우지 못했다. 해군은 섬 주변을 어로제한구역으로 정하고 어민들의 출입을 막았다. 청와대 시설보호와 작전보안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한때 행정구역이 거제에서 진해로 바뀌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오후 경남 거제시 저도에서 국민과 함께 산책하던 중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 숨을 돌리고 있다. 연합뉴스
거제 출신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러나 저도의 상처가 온전히 치유된 것은 아니었다. 문민정부는 대통령 별장인 ‘청해대’를 해제하고 어민들에게 어업권을 돌려줬다. 그러나 군사보호구역은 그대로 유지됐다. 진해 해군기지로 이어지는 해상 요충이라는 이유였다. 2010년에는 거제도와 부산을 잇는 거가대교가 저도를 관통해 완공됐다. 그러나 차들은 도로에서 섬으로 내려올 수 없었다.
민간인들은 바다로도 육지로도 닿을 수 없던 저도가 마침내 시민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 30일 저도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은 섬을 시민들에게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저도를 국민 품으로 돌려드리겠다’고 한 2017년 대선 공약을 지키겠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박근혜 대통령이 이곳에서 휴가를 보내는 모습을 ‘저도의 추억’이라고 해서 방영한 것을 아마 보셨을 것이다. 저도 이곳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보니 정말 아름다운 곳이고 특별한 곳이어서, 대통령 혼자 지낼 게 아니라 대통령과 국민들이 함께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더 굳히게 됐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불편을 겪었을 지역 주민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오후 경남 거제시 저도에서 옛 거주민 및 일반시민들과 산책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군사시설 보호 설비와 유람선 등이 접안할 선착장이 갖춰질 때까지 섬을 시민들에게 시범개방하겠다고 했다. 완전 개방은 준비시설이 충분히 갖춰진 뒤 하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 별장이란 곳이 어떤 곳인지, 또 대통령이 휴가를 보내는 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하실 국민이 많으실 텐데 거제시와 경남도가 잘 활용해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저도에서 1970년대까지 살았던 윤연순씨 등 전 거주민 및 가족, 일반 시민들과 저도에 조성된 산책로를 55분 동안 함께 걸었다. 문 대통령은 “다시 옛날의 추억을 되새겨보는 좋은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청와대는 이날 저도를 9월16일부터 1년 동안 시범개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개방 지역은 산책로, 전망대, 해수욕장, 골프장 등으로 자세한 구역은 지자체와 협의해 결정된다. 대통령 별장은 군사 관련 시설에 포함돼 개방되지 않는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