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후 충남 계룡대 제3문서고(U-3)를 방문해 시설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여름휴가 마지막날인 3일 현재의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를 사실상 해체하고 ‘새로운 사령부’를 창설하라고 전격 지시한 것은 기무사 개혁을 한시라도 늦출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그동안 ‘온라인 댓글 공작’과 세월호 유가족 등 민간인 사찰, 촛불시민 무력진압을 시도한 계엄령 검토 문건 등 기무사의 불법행위가 드러난 만큼, 기무사 개혁을 ‘속전속결’로 진행하겠다는 취지다.
문 대통령은 전날(2일) 국방부의 기무사 개혁위원회가 개혁안을 발표한 지 하루 만에 기무사 개혁 방향을 지시했다. 휴가지에서 청와대로 복귀하기도 전에 지시를 내린 것이다. 문 대통령은 기무사 개혁안을 휴가지에서 살펴봤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휴가를 떠나기 전 기무사 개혁위에 개혁안 보고를 재촉했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무사 개혁의 필요성이 더 커졌다”며 “개혁위가 이미 검토를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논의를 집중해 기무사 개혁안을 서둘러 제출해줬으면 한다”고 지시하기도 했다. 이에 기무사 개혁위는 개혁안 발표를 8월 중순으로 기획하고 있다가 2일로 앞당긴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이 이처럼 기무사 개혁에 속도를 낸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헌정 유린을 시도한 기무사의 불법행위가 뚜렷해지고 있는데다, 시간이 지연될 경우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오랜 시간 강고한 기득권을 지닌 기무사의 반발이 본격화될 경우 개혁이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기무사 계엄령 문건에 대한 전면적인 수사와 개혁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문 대통령은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이 폭로된 직후인 지난달 10일, 국빈방문 중이던 인도에서 “기무사 계엄령 문건과 관련해 독립 수사단을 구성해 신속히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3일까지 문 대통령은 기무사 계엄령 문건 사건과 관련해 “국방부, 기무사 등 각 부대에 오간 모든 문서, 보고 즉각 제출”(7월16일), “문제의 본질은 계엄령 문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7월26일) 등 20여일 사이에 4차례나 지시를 내리며 기무사 개혁의 고삐를 당겼다.
여기에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기무사령관이 국회에서 계엄령 문건 보고 과정을 놓고 ‘공개 설전’을 벌이는 등 하극상 논란이 벌어지고, 자유한국당이 문건 유출 과정 등을 정치쟁점화하며 본질을 흐리는 모습을 보이자, 기무사 인적 청산 및 개혁의 ‘시급성’을 절감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이날 지시를 통해 기무사가 견제받지 않는 군내 무소불위의 조직으로 되돌아가게 하지 않겠다는 뜻을 강조했다. 기무사령관을 비육사 출신인 남영신 사령관으로 전격 교체하는 한편, 민간인 사찰과 댓글 공작 사건, 계엄령 문건 작성 등에 연루된 이들을 원 소속 부대에 복귀시키라고 지시한 것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 새출발시키겠다는 맥락이다. 아울러 새로 꾸려지는 기무사에 비군인 감찰실장을 임명해 조직 내부 비리와 불법을 근절하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이 이날 밝힌 “전면적이고 신속한” 개혁과 “과거와 역사적으로 단절된 새로운 사령부”라는 원칙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공개 지시’를 놓고, 국방부에 대한 문 대통령의 ‘불신’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애초 국방부는 기무사 개혁위원회의 개혁안을 바탕으로 국방부의 기무사 개혁안을 별도로 만들어 문 대통령에게 보고하게 된다고 밝혀왔다. 문 대통령이 국방부의 개혁안을 기본으로 삼아 최종 방안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이 “기무사 개혁위원회 개혁안과 국방부의 기무사 개혁안을 모두 검토”했다고 밝혔다. 두가지 안을 동시에 검토했다는 뜻으로 기무사 개혁에 대한 국방부의 주도권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또 국방부 개혁안을 송영무 장관에게 직접 보고받은 것이 아니라 “전날 국방부를 통해 국가안보실로 보고된 기무사 개혁안을 받아본 뒤 재가를 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성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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