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초청 오찬에서 정해구 위원장(오른쪽)과 함께 이날 보고된 국민헌법자문특위 자문안을 들어 보이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국민과의 약속”, “선거체제 정비”, “재정 절감” 등을 일일이 열거하며 반드시 6월13일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는 21일께 직접 개헌안을 발의할 뜻을 밝히면서, 여야 정치권에 국회의 개헌 합의안을 만들어낼 것을 강하게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헌법자문특위) 위원들과 오찬을 함께하며 “개헌은 헌법 파괴와 국정 농단에 맞서 나라다운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외쳤던 촛불광장의 민심을 헌법으로 구현하는 일”이라고 개헌의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오찬에서 “비례성에 보다 부합되는 선거제도를 만들자고 그렇게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이 요구했는데 지금 개헌에 소극적이면 어느 세월에 헌법적인 근거를 만들겠느냐”고 했다. 문 대통령은 헌법자문특위의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다”며 개헌안 시행 시기를 규정하는 부칙을 마련해 다시 보고해달라고 요청할 만큼 단호한 의지를 피력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개헌안에 담기는 기본권 확대나 각종 선거, 경제 조항 등이 언제부터 시행된다는 점을 부칙에 명확히 해 국민에게 개헌이 자신의 삶과 직결된다는 점을 알리라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이 강하게 개헌 드라이브를 걸고 나선 것은, 지난해 대선에서 자신은 물론 다른 후보들이 공약한 6월 개헌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론자 문재인’의 약속에 대한 ‘강박’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여야 대표 청와대 오찬을 비롯해 틈날 때마다 ‘공약 이행’을 언급해왔다. 그는 이날 “1년이 넘도록 개헌을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는데도 아무런 진척이 없다”, “(개헌안 합의를 미루는 것은) 책임있는 정치적 태도가 아니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려는 대통령의 개헌 준비마저도 비난하고 있다”며 전례없이 강한 어투로 야당의 약속 파기를 성토했다.
문 대통령은 아울러 이날 처음으로 개헌을 통해 정치체제를 효율적으로 정비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그는 “대통령 임기 중에 3번의 전국선거(대선, 총선, 지방선거)를 치르게 돼 국력의 낭비가 심한데 개헌을 하면 선거를 2번으로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이 이뤄지면 2022년부터는 대선과 지방선거를 4년 단위로 함께 치르게 되며, 2024년 등 그 중간중간마다 4년 단위로 총선을 치를 수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선과 지방선거를 함께 치러 정부의 책임성을 높이고, 총선을 통해 정부를 중간평가할 수 있게 돼 정치체제를 완비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4월 말 남북정상회담, 5월 북-미 정상회담 등 한반도 문제가 쌓인 가운데 마냥 개헌을 붙들고만 있을 수 없다는 인식도 작용했다. 문 대통령은 “민생과 외교, 안보 등 풀어가야 할 국정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언제까지 개헌이 국정의 블랙홀이 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6월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분리해 치를 경우 1200여억원의 예산을 추가로 들여야만 하는 점도 고려했다.
문제는 문 대통령이 오는 21일께 발의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통령 개헌안의 통과 여부다. 현재로선 10월 개헌을 주장하는 자유한국당의 벽을 넘긴 어려워 보인다. 자유한국당은 개헌 저지선(국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인 116석을 갖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의 발의 시한은 법적으로는 3월21일이지만 정치적으로는 국회의 논의와 합의 상황에 달려 있다. 이를 보고 대통령이 최종적인 판단을 내릴 것”이라며 여지를 열어뒀다. 국회 개헌안은 대통령 개헌안과 달리 심의 기간이 필요 없어 4월28일까지만 발의하면 6월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국민투표를 치를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한 달간이 골든타임”이라며 국회의 개헌안 합의를 촉구했다.
하지만 이 ‘마지노선’을 넘길 기미가 보인다면 문 대통령은 권력 구조를 포함한 대통령 개헌안을 발의할 게 확실시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6월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믿음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비록 개헌안이 부결되더라도 청와대로선 ‘촛불혁명’의 제도화를 시도했고, 공약을 지키려 했다는 ‘명분’은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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