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건물을 나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차에 탑승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명박 전 대통령은 18일 자신의 전날 “정치 보복” 성명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분노”했다는 청와대 발표가 나오자, 측근들에게 “아무런 반응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이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평화의 올림픽을 앞두고 남북도 손을 잡는데 현직 대통령과 전전 정권 간의 싸움으로 번지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이 전 대통령의 생각인 것 같다”며 이렇게 전했다.
이날 이 전 대통령은 서울 대치동 사무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본인의 입장을 성명을 통해 충분히 밝힌 만큼 당분간 사무실에 나올 일은 없다는 것이 주변의 설명이다. 이 전 대통령 쪽은 “어제 입장 발표로 현 정권이 반응을 하게 만들었으니 성명 내용이 상당히 먹혔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두고 문재인 정권 사람들이 ‘너희들도 당해보라’는 보복 심리가 있다는 것은 다들 알지 않느냐”며 “문 대통령이 ‘분노’라는 표현을 썼는데, 정치보복을 당하는 사람이 분노해야지 보복을 하는 쪽이 분노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했다.
이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은 이날 아침부터 라디오 프로그램에 일제히 출연해 ‘정치보복’ 프레임 확산에 나섰다.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검찰이) 많은 부분을 덮은 걸로 알고 있다”, “저희들도 이전투구를 한번 해볼까요” 등 문재인·노무현 정부를 겨냥했다. 이명박 정부 특임장관을 지낸 이재오 늘푸른한국당 대표는 “(이 전 대통령을 검찰) 포토라인에 세운다는 것은 그야말로 표적해 놓고 기획해서 정치 보복하는 건데, 전전 정권의 문제를 거슬러서 잡아간다면 전전전 정권은 무사하냐”고 주장했고, 김효재 전 정무수석은 “왜 저희들이라고 아는 게 없겠느냐”고 여지를 남겼다.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의혹 수사를 ‘문재인 정권 대 보수 정권’ 구도로 규정한 이 전 대통령의 입장을 반복한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이 전 대통령은 다시 대통령 할 일이 없는 전직이다. 잃을 게 없다. 반면 현 정권은 진흙탕으로 끌려오게 되면 득될 게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중단됐던) 640만달러 의혹 등 이미 공개된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요구하면 당시 민정수석이자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문 대통령도 진흙탕으로 끌려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남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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