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후 '제31차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ASEAN) 정상회의'가 열리는 필리핀 마닐라 소피텔호텔에서 리커창 중국 총리(오른쪽 둘째)와 회담하고 있다. 마닐라/연합뉴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3 정상회의’와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참석을 위해 필리핀 마닐라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13일 마닐라 시내 소피텔 호텔에서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를 만나 양국 관계 복원을 위한 실질적인 교류협력 방안 등을 협의했다.
리커창 총리와 마주 앉은 문 대통령은 “사드 문제로 침체되었던 한-중 관계로 인해 한국의 많은 기업이 어려움을 겪어왔다”며 우리 기업들의 애로가 해소되고 양국 간 경제·문화·관광 교류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리 총리의 관심과 협조를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경제분야에서 고위급협의체의 신속한 재개와 함께 중국내 우리 기업이 생산한 배터리 보조금 제외 철회, 한국산 제품에 대한 반덤핑 수입규제 철회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또 “양국에 개설된 원-위안화 직거래 시장 발전과 양국 금융협력 분야의 속도감 있는 추진, 미세먼지에 대한 양국 공동대응 등도 제안했다”고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전했다.
리 총리는 배터리 부분에 대해선 중국 소비자들의 관심과 안전 문제 등에 대해서 유의를 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반덤핑 수입규제 철회 요구에는 “WTO(세계무역기구) 규정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답했다. 리 총리는 이어 “중-한 관계의 발전에 따라 일부 구체적이고 예민한 문제들을 피하긴 어렵지만, 중-한 간의 실질협력 전망은 아주 밝다”며 “중-한 양국은 상호보완성이 강해 중-한 관계의 미래는 자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리 총리는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의 요구에 확실한 답변을 주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한-중 간 경제·사회·문화 전 분야에서 관계가 정상화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회담 머리발언에서 “중국 고전에 ‘꽃이 한송이만 핀 것으로 아직 봄은 아니다. 온갖 꽃이 함께 펴야 진정한 봄’이라는 글을 봤다”며 “오늘 총리와의 회담이 다양한 실질 협력의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비옥한 토양을 만들어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운을 뗐다. 문 대통령은 이어 “이를 통해 조속한 시일 내에 양국 간 정치 경제 문화 관광 인적교류 등 모든 분야의 교류협력이 각양각색의 꽃을 활짝 피우면서 양국 국민들이 한-중 관계가 진정한 봄을 맞이했다는 것을 피부로 체감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길 바라 마지않는다”며 한-중 관계의 완전한 복원을 위한 중국 정부의 실질적 조처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리 총리도 “중국에 이런 말도 있다. 봄이 오면 강물이 먼저 따뜻해지고 강물에 있는 오리가 따뜻한 봄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 있다”며 “양측의 공동의 노력을 통해서 중-한 관계를 조속히 정상적인 궤도에서 추진해나가길 희망한다”고 화답했다. 리 총리는 또 “그동안 양측은 예민한 문제를 단계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중-한 관계도 적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며 “이 과정에서 문 대통령이 기울여주신 노력을 적극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과 리커창 총리의 만남은 오후 5시30분으로 예정돼 있었으나, 미-아세안 그리고 중-아세안 정상회의가 길어지면서 수차례 연기되다가 이날 밤 8시48분(현지시각)에야 서로 마주 앉을 수 있었다.
50분 동안 이어진 이날 회담에서 한-중은 한반도 비핵화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재확인했다. 양측은 또 “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대화 재개여건을 조성하는 등 국면전환을 위한 창의적인 해법을 마련키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고 윤영찬 수석은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1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베트남을 방문중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모든 분야에서의 교류 협력을 정상궤도로 조속히 회복시키자”고 합의한 데 이어, 이틀 만에 리 총리까지 만나 관계정상화를 선언함으로써 향후 한-중관계는 급속한 진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마닐라/김보협 기자, 성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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