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참석자들이 26일 저녁 서울 여의도 63빌딩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10·4 남북 정상선언 10주년 기념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10년 전 10월4일은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손을 잡았던 역사적인 날이다.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10·4 정상선언’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을 향해 새로운 제안을 내놓지는 않았다. 대신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로 빚어진 ‘유례없는 안보 위기’에 대한 ‘상황 관리’에 초점을 맞추면서 ‘베를린 선언’ 등을 통해 밝힌 한반도 평화 구상의 큰 줄기는 계속 유지해나갈 뜻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26일 노무현재단·통일부·서울시 공동주최로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10·4 남북정상선언 기념식 축사에서 ‘평화’에 대한 의지와 ‘상황 관리’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현재의 남북관계를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이전으로 되돌아갔다”고 표현할 만큼, 그 어느 때보다 한반도 안보환경이 엄중해졌기 때문이다. 북한과 사실상 모든 대화 채널이 끊긴 상태에서, 우발적 충돌이 한반도 전쟁 위기로 번지는 것을 막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게 급선무라고 본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한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평화는 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분쟁을 평화로운 방법으로 다루는 능력을 의미한다’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말을 인용한 바 있다. 청와대는 이번 축사 초안을 작성하면서 북한과의 대화 고리가 될 만한 추가 제안들을 넣는 방안을 고심하다 ‘상황 관리’ 메시지에 집중하기로 결론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도 “분명한 것은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여정은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중단돼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라며 “국제사회도 평화적 해결 원칙을 거듭거듭 확인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줄곧 밝혀왔던 ‘10·4 정상선언 정신으로의 복귀’가 한반도 문제를 풀 여전한 ‘열쇠’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이날도 “이 위기를 넘어서야 10·4 정신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북한이 무모한 선택을 중단한다면 대화와 협상의 테이블은 항상 열려 있다”고 말했다. “군사적 긴장의 악순환이 한계점에 이른 지금 대화의 필요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던 지난 7월 베를린 구상이나,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은 선후의 문제가 아니다. 제재와 대화가 함께 갈 때 문제 해결의 단초가 열렸다”던 ‘광복절 기념사’ 메시지보다는 한발 물러선 것이지만, 대화의 가능성을 닫아두진 않은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새로운 대북 제안을 내놓진 않았다. 긴장 완화와 인도적 관점에서 이미 제안했던 군사회담 복원과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재차 거론한 게 전부다. 북-미가 ‘강 대 강’으로 맞붙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한계를 절감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참여정부 당국자 출신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북-미의 거친 말싸움으로 위기감이 높아진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대화를 강조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을 것”이라면서도 “외부적으로 조성된 정세의 탓이 크긴 하지만, 새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이 총체적 난국에 빠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정애 정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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