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14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긴급 소집해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문 대통령,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홍용표 통일부 장관.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 취임 닷새째인 14일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기습 발사하자, 문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직접 주재하는 등 기민하고 단호한 대응으로 북한을 향한 ‘기선잡기’에 나섰다. 대선 캠페인 기간 동안 ‘대북 포용정책의 발전적 계승’을 주장했던 문 대통령은, 이날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비판하며 국제사회와의 공조 및 강력 대처를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 회의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유엔 안보리의 관련 결의의 명백한 위반일 뿐 아니라 한반도는 물론 국제 평화와 안전에 대한 심각한 도전행위”라고 규정하고, “북한의 무모한 도발에 대한 깊은 유감을 표하며 동시에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또 “군은 굳건한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어떤 군사 도발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철저한 대비 태세를 유지하기 바란다”고 주문했고, “외교 당국에서는 미국 등 우방국 그리고 국제사회와 공조해 북한의 이번 도발 행위에 대해 필요한 조처를 취해주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국방력의 압도적 우위를 바탕으로 한 북핵 억지 방안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군은 굳건한 한-미 동맹을 기반으로 우리 군의 한국형 3축 체계(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 킬체인, 대량응징보복 작전) 구축 등 북한의 도발에 대한 억제력을 빠른 시일 안에 강화해 나가기 바란다”며 “특히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추진 상황을 점검해 속도를 높이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 출범 나흘 만에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것을 새 정부에 대한 도발로 간주해, 강력한 대응을 대내외에 천명했다. 이런 메시지는 대선 후보 시절 ‘대북 제재와 대화 병행’을 강조해온 기조에 견주면 한층 수위를 높인 것이다. 문 대통령은 또 핵실험 등 ‘고강도’ 도발이 아닌 탄도미사일 발사 같은 ‘저강도’ 도발에도 곧바로 회의를 주재해, 첫 안보 시험대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주력했다. 정부 출범 직후 국민들의 안보 불안감이 확산되는 것을 조기에 차단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아침 6시8분께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에게서 미사일 발사 관련 사항을 보고받은 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직접 보고하라”고 지시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한 외교·안보 부처 장관들과 회의를 열었다.
그러면서도 문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만”, “대화가 가능하더라도 북한의 태도 변화가 있을 때 비로소 가능” 등을 언급하며 박근혜 정부 시절 제재 일변도의 대북정책과는 차별화를 시도했다. ‘대화 가능성’을 여전히 언급하면서 대화-압박의 병행전략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내비친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북한이 먼저 비핵화를 해야 대화와 협상을 할 수 있다는 ‘북한 선행동론’에 사로잡혀 남북관계가 긴장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인 지난달 23일 발표한 ‘한반도 비핵화 평화구상’에서 “햇볕정책과 대북 포용정책을 발전적으로 계승해 북한의 변화를 전략적으로 견인해내겠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의 선행동론’ 대신 북한과 미국을 포함한 관련 당사국들의 동시 행동을 이끌어 내겠다며 ‘한국 역할론’을 강조하기도 했다. 다만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닷새밖에 되지 않아 미국, 중국 등 주요 주변국과 북핵·미사일 대응책을 조율할 시간이 없었던 만큼, 일단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앞세우며 보조를 맞추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북한과의 대화 문제에 대해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제1의 과제다. 구체적 방법은 조금 더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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