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정세균 국회의장과 정국 해법을 논의하기 위해 국회 본관에 들어서자 야당의원들이 손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정세균 국회의장과 만나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 대신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를 임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 2일 김병준 후보자를 지명한 지 엿새 만에 ‘국회 추천 총리’라는 여야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새 총리의 권한을 명확히 하지 않은 채 국민적 요구인 ‘2선 후퇴’에 대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촛불집회 등 시민들의 저항이 커지면 마지못해 한발씩 물러서는 박 대통령의 ‘살라미’식 대응이 반복됨에 따라 정국 정상화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회를 전격방문해 정 의장과 13분 동안 면담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대통령으로서 저의 책임을 다하고 국정을 정상화시키는 것이 가장 큰 책무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의장님을 만나뵈러 왔다”며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총리에 좋은 분을 추천해주신다면 그분을 총리로 임명해서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야권이 대화의 선결 과제로 제시했던 ‘국회 추천 총리 수용’ 요구를 받아들이겠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야당이 강조해온 ‘2선 후퇴’에 대해선 “총리가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해 나가도록 하겠다”는 발언 외에는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는 헌법 제86조 2항의 총리 역할 규정을 되풀이한 수준으로, 대통령으로서 국정의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야권은 박 대통령의 ‘2선 후퇴’ 등에 대한 모호한 의사 표시를 비판하며 명확한 입장을 거듭 요구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민과 민주당이 요구하는 것은 국정을 농단해온 대통령이 국정에서 손을 떼라는 것”이라며 “대통령은 아직도 국민의 눈높이에 한참 떨어져 있다”고 비판했다. 추 대표는 “진심이 담긴 사과와 반성 없이 국회를 기습 방문해 일방적으로 총리만 제안하라고 한 것은 또 한번 국민을 무시하고 기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도 “대통령 자신이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국회에 합의하라고 던져놓은 시간벌기용”이라고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지난 주말 수십만명의 시민이 촛불집회에서 ‘박 대통령 하야’를 요구한 데 비춰보면 박 대통령의 수습책은 민심과 거리가 한참 멀다는 판단인 것이다.
이날 오후 정세균 의장과 여야 3당 원내대표 회동에서도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우상호·박지원 원내대표는 이런 점을 지적하며 새 총리의 권한에 대해 정 의장이 박 대통령에게 재확인할 것을 요구했다. 야권은 박 대통령의 추가 입장에 따라 향후 대응 방향과 수위를 조절한다는 방침이다. 반면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대통령으로서는 야당의 요구사항을 전폭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본다”고 옹호했다.
한편 박 대통령의 ‘국회 추천 총리’ 수용에도 김병준 총리 후보자는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자진 사퇴는 없다’는 태도를 고수해, 당분간 정국 혼돈의 한 축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최혜정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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