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법 개정안은 행정부 견제 아닌 통제 위한 것”
정부는 국회가 19일 의결한 국회법 개정안(청문회 활성화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이 아프리카 순방 중인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청문회 활성화법 재의요구안을 의결했다.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청문회 활성화법의 공포를 의결하지 않고, 재의요구안을 의결하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거부권’이란 국회가 의결해 정부에 보낸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 대통령이 해당 법률안을 국회로 돌려보내 재의를 요구할 수 있는 헌법상 권리다. 헌법 53조는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은 정부에 이송돼 15일 안에 대통령이 공포하도록 돼 있지만,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하면 국회가 이를 다시 의결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황교안 총리는 회의에서 “이번 국회법 개정안은 행정부 견제가 아니라 통제를 위한 것”이라며 “입법부가 행정부 등에 대한 새로운 통제수단을 신설하는 것으로 ‘권력 분립 및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법 정신에 부합하지 않아 위헌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황 총리는 “국회법 개정안의 ‘현안조사 청문회’는 그 대상에 제한이 없어 헌법에 따른 국정조사에서도 금지하고 있는 재판 또는 수사에의 관여, 개인 사생활 침해 등이 결과적으로 초래될 소지가 많다”고 말했다. 황 총리는 “국회법 개정안에 의하면 행정부의 모든 업무가 언제든지 청문회 대상이 될 수 있어 국정에 큰 부담이 초래되는 것은 부득이 하고 이는 결국 국민들의 어려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제정부 법제처장은 국무회의 뒤 브리핑을 통해 정부의 거부권 행사 이유를 밝혔다. 제 처장은 청문회 활성화법이 △헌법이 규정한 국회의 행정부에 대한 통제수단을 벗어나 새로운 수단 신설 △헌법에 규정된 국정조사 제도의 형해화 우려 △소관 현한이 포괄적이어서 국정 및 기업 등에 과중한 부담 우려 △주요 선진국에서 보기 드문 사례라는 점 등을 거부권 행사의 이유로 제시했다.
법제처는 미국은 청문회가 상시적으로 열리지만 헌법상 국정감사나 국정조사 제도를 별도로 두지 않고 있고, 독일과 일본은 헌법에 국정조사의 근거를 두고 있지만 미국식의 청문회 제도는 따로 두지 않고 공청회 제도만 운영한다는 점 등을 들었다.
제 처장은 20대 국회의 재의결권 보유 여부와 관련해 “학자들 사이에 여러 논란이 있는데 19대 국회의 안건이라 헌법 51조에 따라 ‘임기 만료 시 자동폐기된다’는 견해도 있을 수 있고, ‘국회가 처리하지 못하면 20대 국회에서 처리할 수 있다’는 견해도 일부 있다”며 “그런 부분은 국회가 전적으로 판단해서 그렇게 처리할 문제”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정부의 거부권 행사는 지난해 6월25일 국회의 행정입법(정부 시행령) 통제 권한을 강화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이후 2번째다.
헌정사상 법률안 거부권 행사는 이번이 74번째다. 이 가운데 의원내각제였던 제5대 국회에서 대통령이 아닌 참의원이 거부권을 행사한 8건을 빼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는 66번째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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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황교안 총리의 마무리 발언
오늘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를 하면서 행정부와 입법부 간 견제와 균형 관계의 정립이 국정 운영에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헌법은 삼권분립의 원칙 하에서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에 각각 고유 권한을 부여하고 있고 아울러서 상호 견제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이 중에서 입법부에는 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도록 예산 심의권, 국정감사권, 국정조사권 등 여러 가지 권능을 부여하고 있다. 다만 이런 입법부의 권능은 행정부가 이를 제대로 잘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행정부에 대한 감시·견제 장치를 둔다는 것이지, 거기서 더 나아가서 행정부의 일하는 과정 전반을 하나하나 국회가 통제하도록 하자는 취지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만일 그렇게 되는 경우에는 행정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가 발생할 수 있고 이와 관련돼서 국민들께서도 큰 우려를 하시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국회법 개정안은 개정안의 제안 이유에서도 국회의 국정 통제 권한이 보다 실효적으로 행사되기 위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국회가 제출한 제안 이유에 보면, 거듭 말씀드리지만 국회의 국정 통제 권한이 보다 실효적으로 성사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즉, 국정 통제의 목적이 있는 법안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국회법 개정안은 행정부에 대한 견제가 아니라 통제를 위한 것이란 점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국회에서 정부로 이송된 국회법 개정안 법적인 측면에서나 국정 운영 그리고 사회적 비용 측면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이번 국회법 개정안은 위헌 소지가 잇다. 법제처장 보고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습니다만은, 현안 조사를 위한 청문회 제도 이것은 입법부가 행정부 등에 대한 새로운 통제 수단을 신설하는 것으로서 권력 분립 및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법 정신에 부합되지 않는다. 또한 현안 조사 청문회는 그 대상에 제한이 없다. 따라서 헌법에 따른 국정조사에서도 금지하고 있는 재판권 수사에의 관여, 그리고 개인 사생활 침해 등이 결과적으로 초래될 수 있는 소지가 많다. 나아가서 청문회 개최 여부도 국정조사와는 달리 상임위 또는 소위 의결만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에 자칫 헌법상 국정조사 제도가 유명무실화될 우려마저 있기 때문에 위헌 소지가 있는 것이다.
둘째, 국회법 개정안에 의하면 행정부의 모든 업무가 언제든지 청문회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국정에 큰 부담을 초래하는 것이 부득이하고 이것은 결국 국민들의 어려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상시적으로 개최될 수 있는 청문회 과정에서 공무원들은 방대한 자료 제출, 증인으로 출석 등 많은 부담을 안게 되어서 결국 행정부의 업무 마비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이 있다.
또한 상시 청문회는 사업자 선정, 국책 사업 입지 결정 등 진행 과정에 있는 행정 행위의 중립성에도 영향을 미칠 우려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대다수 정부 부처가 지금 세종시에 있다. 공공기관은 지방으로 이전한 상황이다. 이러한 현 상황에서 상임위 또는 많은 수의 소위에서까지 청문회가 상시화되면 국회 출장 등으로 인한 행정 비효율이 더욱 심각해질 우려가 있다. 세종시와 국회를 한번 오가는 데에만 너댓시간이 소요된다. 또 청문회를 준비하는 시간도 추가로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셋째, 대부분의 국정 현안은 복잡 다양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하나의 사안에 대해서 여러 상임위에서 동시 다발적인 청문회 개최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미 이런 경험들을 여러 번 했던 일이 있었다. 이렇게 되면 결국 국정 운영에 혼선을 초래하고 사회적 갈등과 곤란이 심화될 수 있다.
넷째, 이번 국회법 개정안에 따르면 기업인·일반인들도 상시 청문회에서 증인·참고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기업인들과 일반 국민들까지 사안에 따라 청문회의 증인·참고인으로 참석할 수밖에 없게 되어서 과도한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생활까지 침해될 수 있다는 걱정과 우려가 많이 있다. 과거의 예를 보더라도 기업인에 대한 과도한 증인 채택, 장시간 대기, 아무런 질의도 없이 귀가하는 사례 등이 있어서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많이 있어왔고, 앞으로도 이러한 경우가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가 계속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정책 중심으로 청문회를 운영하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남용이 걱정되는 제도를 도입하는것보다는 남용의 소지가 없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오는늘 국무회의 회의에서 국무위원들 의견을 모아 국회법 개정 법률안에 대한 재의 요구를 대통령께 건의하기로 했다.
이번에 이렇게 결정하게 된 것은 입법부와 결코 대립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헌법이 정한 입법부와 행정부 간 협력과 견제 정신에 따라서 민생을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 국회법 개정안과 관련해서 국회의 내부 운영 상황으로 행정부가 의견을 내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이번 국회법 개정안의 내용이 행정부의 국정 운영을 근본적으로 어렵게 할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입법부의 행정부에 대한 정상적인 감시·견제 수준을 크게 벗어나고 있다고 판단되어서 불가피하게 정부의 의견을 내는 것이다.
앞으로 정부는 국회의 국정감사 국정조사 대정부질문 등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제도를 통해서 국회의 감시와 견제 하에 바르고, 원활한 국정을 수행해 나가도록 더욱 노력하겠다. 정부가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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