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8일 4·13 총선 이후 처음 열린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박근혜 대통령이 4·13 총선 이후 18일 처음 내놓은 공식 입장은 ‘핵심 국정과제’의 강력한 추진이었다. 집권여당의 총선 참패 이후 닷새 만에 내놓은 첫 메시지였지만, 총선 결과에 대한 책임보다는 ‘객관적 평가’를 통해 거리두기에 나서는 모습이다. 또 “국회와의 긴밀한 협의”를 밝히면서도, 동시에 쟁점 법안 등에 대한 “흔들림 없는 추진”을 재확인해 기존 국정운영 방향과 기조를 이어갈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민의 민의가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하는 계기”, “국민의 민의를 겸허히 받들어” 등 ‘민의’를 잇따라 언급하며, 총선 참패가 ‘심판의 결과’라는 점은 인정했다. 박 대통령은 또 “정부도 새롭게 출범하는 국회와 긴밀하게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혀, 기존의 강경한 입장에서 대화·설득 기조로 변화할 가능성도 열어놨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말부터 총선 직전까지 줄기차게 ‘야당 심판론’을 주장해왔으나, 20대 국회에서 야권이 과반을 차지하게 된 만큼 대야 관계의 변화도 불가피해진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거듭 언급하면서도, 총선 참패의 책임이나 반성과 관련된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다. 총선 패배 원인이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가 아닌, 공천 파동과 공약 미비 등 새누리당의 잘못에 있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총선 결과가 새누리당에 대한 심판과 함께 ‘박근혜 정부’ 3년에 대한 중간평가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 자신의 책임론을 피해가는 모습이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이날 6분여의 머리발언 가운데 43초 정도만 다소 빠른 어조로 총선 결과를 언급했을 뿐, 나머지는 안보·경제위기를 부각시키며 경제활성화,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데 할애했다.
박 대통령은 “정부와 국회, 국민이 함께 힘을 모아서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한다”며 또다시 단합을 호소했고, “경제활성화와 구조개혁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당에 손을 내미는 듯하지만, 실제로 여야가 첨예하게 대치해온 파견법 등 쟁점 법안에 대해선 ‘정면 돌파’ 의지를 밝히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진 개편과 개각 등 인적 쇄신 요구와 관련해서도 “비서실과 내각은 새로운 각오로 국정에 전력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밝히며 선을 그었다. “민의를 받들어”라고 강조했지만, 여야 영수회담이나 인적 쇄신, 국정운영 방식 변화 등 ‘민의’를 수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은 담지 않은 것이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야당인 한나라당이 승리한 2000년 16대 총선 직후, ‘여소야대’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경제 및 남북관계 문제를 논의하는 여야 영수회담 개최를 제안한 바 있다.
임기를 22개월 남긴 박 대통령이 기존의 일방적 국정운영 방식을 이어가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야권이 과반을 차지하고 지지율마저 30%대 초반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활용할 수 있는 ‘카드’는 제한적이라는 설명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새누리당의 122석은 단지 과반 미달 수준이 아닌, 국정운영 동력을 상실한 의석”이라며 “야당과의 협력이 불가피해졌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을 지원해야 할 여당 안에서도 박 대통령의 ‘안일한’ 의식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아, 향후 당-청 관계의 변화도 주목된다. 서울 지역의 한 총선 당선자는 “청와대나 내각의 인적 쇄신 등 새로 시작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다”고 말했고, 수도권의 한 낙선자는 “반성하고 사과하고 책임자를 문책하겠다고 해야 하는 상황인데 참 한가하다. 구제불능”이라고 비판했다.
최혜정 김남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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