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반드시 책임 묻겠다” 강경
무죄 판결나자 말 바꿔
“선처 뜻 전달한 외교부 입장 참고를”
일본 언론 “한국 민주주의 상처” 지적
검찰, 항소 여부 놓고 고민 빠져
무죄 판결나자 말 바꿔
“선처 뜻 전달한 외교부 입장 참고를”
일본 언론 “한국 민주주의 상처” 지적
검찰, 항소 여부 놓고 고민 빠져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당일 행적 관련 칼럼을 쓴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에 대한 한국 법원의 무죄 판결 다음날인 18일 청와대는 외교부에 공을 넘기려 했다. 가토 전 지국장의 칼럼이 보도된 직후 청와대 홍보수석을 통해 “민형사상 책임을 반드시, 끝까지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부추겨놓고, 무죄 판결로 국제적 조롱거리가 된 현실에는 ‘일본의 선처 요구를 법원에 전달했다’는 전날 외교부 발표를 참조하라며 자가당착적 모습을 보였다. 반면 기소를 맡은 검찰에선 고민이 묻어났다. 일본 언론들은 몇개 면씩 펼쳐 이 사안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1
<아사히신문>은 18일치 1면 해설 기사에서 가토 전 지국장의 기소가 ‘한국 민주주의에 상처’가 됐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가토 전 지국장의 재판은 보도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일본 정부로부터 문제 제기를 당했고, 해외에서도 혹독한 비판을 당했다. (한국 외교부가) 법원에 이례적인 요망을 발표하기 전에 왜 박근혜 대통령은 기소를 멈추지 못했는가. 그사이에 한국의 민주주의와 일-한 관계가 입은 상처는 깊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의 당사자인 <산케이신문>은 무려 8개 면을 할애해 이번 판결 등을 보도했다. 신문은 이날 1면에 낸 성명을 통해 “이 재판이 장기화돼 일-한 양국간의 큰 외교 문제가 된 것은 우리가 결코 바라는 게 아니고 매우 유감”이라고 밝히며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가 보호하는 범위 안에 있다’고 판단한 법원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2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전 기자들의 질문에 “외교부의 입장을 참고하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입장이 외교부의 입장 발표와 동일한가를 묻는 추가 질문엔 “그렇다”고 답했다. 외교부는 전날 <산케이신문> 보도가 허위사실이라는 재판부의 판단만 강조하며 “한-일 관계 개선 기대” 입장을 밝혔을 뿐이다. 대통령에 대한 비방의 목적이 없어 ‘공인’의 명예훼손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판결의 핵심 요지는 청와대도 외교부도 언급하지 않았다. 언론 보도에 대한 강경대응을 천명해 한-일 관계를 악화시켰다는 지목을 받는 청와대가 이제 와서 외교부 입장을 인용하며 한발 물러나는 모양새다. 청와대는 지난해 8월 가토 전 지국장의 칼럼이 보도된 직후 윤두현 당시 홍보수석을 통해 “민형사상 책임을 반드시, 끝까지 묻겠다”며 강경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명예훼손죄는 피해 당사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기소를 할 수 없기 때문에(반의사 불벌죄) 검찰은 피해자의 처벌 의사부터 확인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직접 가토 지국장을 처벌해달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검찰은 윤 수석의 발언을 박 대통령의 처벌 의사로 간주해 가토 전 지국장을 조사하고 기소했다.
#3
검찰은 항소 여부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한 검찰 관계자는 “아직 따로 입장을 말씀드릴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판결문이 오면 면밀히 검토해 본 뒤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통상 무죄 사건의 경우 자동으로 항소를 하고, 주요 사건의 경우 무죄 판결 직후 즉각 항소의 뜻을 밝히던 것과는 다른 태도다. 게다가 외교부가 재판 전 법무부에 가토 전 지국장에 대한 선처 요청의 뜻을 담은 공문을 보낸 바 있어 항소에 대한 검찰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검찰은 법원이 ‘사인’에 대한 명예훼손만 인정할 뿐 비방의 의도가 없었고 ‘대통령’으로서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은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데 대해서도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이 검찰 관계자는 “재판부가 사인과 공인을 분리해서 봤는데, 이게 적합한 것인지 등 여러 쟁점에 대해 법리적인 검토를 해보고 항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혜정 최현준 기자, 도쿄/길윤형 특파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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