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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대통령실

청와대의 월권…야당 설득 없이 국회수장에 입법 주문

등록 2015-12-15 21:37수정 2015-12-15 22:14

청와대, 국회의장에 직권상정 압박

여야 협상 교착상태 빠지자
노동법 등 쟁점법안 폐기 우려

‘경제 위기’ ‘국가 비상사태론’ 펴며
정 의장에 직권상정 몰아붙여
“국회를 행정부 거수기 취급” 비판
15일 청와대가 국회의장의 법안 직권상정을 촉구하는 ‘초강수’를 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조바심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청와대가 국회와 물밑에서 조율하는 경우는 있지만, 대통령의 ‘정치적 분신’인 청와대 정무수석이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을 찾아 직권상정을 공식 요청하고, 이런 내용을 공개한 것은 국회의장에 대한 고강도 압박으로 읽힌다. 박 대통령의 잇따른 국회 비난 발언에도 법안 처리가 여의치 않자, 청와대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직접 요구하는 데까지 이른 셈이다. 청와대가 삼권분립 원칙을 어기고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는 월권행위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날 오후 정 의장과의 면담 내용을 브리핑하며 “(언론) 보도를 보니 정의화 의장께서 선거법(선거구 획정안)만 직권상정하겠다고 했는데 그건 안 되겠다 생각해서 (의장을) 찾아뵈었다”며 “선거법이나 테러방지법, 경제활성화법, 노동법도 직권상정하기에는 똑같이 미비하다. 선거법만 (처리)한다는 것은 국회의원들 밥그릇에만 관심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야 합의가 안 된 선거법을 직권상정할 수 있는 논리라면, 나머지 주요 법안들도 처리 못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또 국회의장이 국민들의 일자리 등 민생과 관련한 법안은 뒷전에 두고, 국회의원 또는 정치 지망생들의 이해관계에만 매몰되어 있다는 청와대 핵심부의 불만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현 수석은 “(선거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차기 국회를 구성할 입법부가 없어지는 혼란이 생긴다는 논리를 펴지만, 더 큰 상황은 국민들의 민생과 일자리, 안전 문제라는 걸 (청와대는)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안에서는 여야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노동관계 5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기업활력제고특별법, 테러방지법 등 ‘대통령 관심 법안’들을 통과시킬 수 있는 방법은 국회의장 직권상정이 유일한 ‘돌파구’라는 시각이 많다. 이들 법안이 19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폐기될 경우 이른바 ‘박근혜표 개혁’이 무위로 돌아갈 수 있다는 강한 우려가 국회의장에 대한 이례적 직권상정 압박으로 표출된 것이다. 전날 박근혜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경제 위기’ ‘대량 실업’ ‘대량 해고’ 등을 강조하고, 새누리당이 야당의 분열로 국회의 입법기능이 마비됐다고 주장하며 지금이 ‘국가 비상사태’와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을 펴는 것도 직권상정의 요건인 ‘전시·사변 등 국가 비상사태’를 충족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현 수석은 법안 통과를 위한 청와대의 노력에 대해선 “대통령께서 야당을 만난 횟수나 국회에 간 것을 종합해보면, (야당 지도부를) 적게 만난 게 결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야당 지도부와 단독으로 만난 적이 한 차례도 없는데다, 최근 정기국회·임시국회 국면에서는 국회, 특히 야당을 겨냥해 “립서비스” “위선” “기득권 집단의 대리인” 등의 일방적인 비난을 쏟아내며 심판론까지 제기했다. 행정부 수반으로서 입법부에 대한 설득과 대화 노력은 하지 않은 채 국회를 행정부의 거수기로 여기는 발상이 직권상정 요구로까지 이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박 대통령은 본인을 ‘국정의 초월자’ 위치에 올려놓고 국회를 향해 아랫사람 나무라듯이 비판해왔다”며 “국정의 최고 지도자로서 반대 세력도 만나고 고언도 들어야 하는데 이런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대통령으로서 중대한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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