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청와대 ‘이중행보’
박근혜 대통령이 5일 “통일을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에 대한 강한 자긍심과 역사에 대한 뚜렷한 가치관”이라고 말했다. 지난 3일 국정화 확정고시 이후 당·정·청이 한목소리로 ‘정치권 불간섭’을 선언했으나, 박 대통령이 이 원칙을 깨고 사실상의 집필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뚜렷한 역사 가치관 없으면 통일돼도 북 사상에 지배”
박, 통준위 회의서 ‘좌편향’ 제기…당정청 합의 무력화
현정택 수석, 최몽룡 교수에 ‘회견참석 종용’ 전화까지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6차 통일준비위원회 회의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과 확고한 국가관을 갖도록 하는 것이 통일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또 “(자긍심과 가치관이) 선행되지 않으면, 통일이 되기도 어렵고 통일이 되어도 우리의 정신은 큰 혼란을 겪게 되고 중심을 잡지 못하는, 그래서 결국 사상적으로 지배를 받게 되는 그런 기막힌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검인정 교과서가 “북한에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서술돼 있다”(10월23일 ‘5자 회동’ 발언)는 인식을 거듭 강조한 것으로, 국정 교과서를 통한 ‘단일한 국가관’을 교육받지 못할 경우 북쪽의 사상에 흡수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편 것이다. 이어 박 대통령은 “앞으로 통준위에서 이런 것을 잘 이해하시고, 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과 확고한 국가관을 갖도록 하는 것이 통일의 시작이라고 생각하시고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현행 검인정 교과서가 ‘친북 교과서’라는 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박 대통령이 또다시 현행 교과서의 ‘좌편향성’을 제기하며 집필 가이드라인을 밝힌 것은, 국정화 후속 조처를 국사편찬위원회에 일임하고 정치권은 간섭하지 않겠다던 고위 당·정·청의 합의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황교안 국무총리,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 등 당·정·청 고위 인사들은 지난 3일 “제대로 된 역사교과서를 만들기 위해선 독립성 보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에 (당·정·청이) 인식을 함께했고 정치권에서 ‘불간섭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점에 공감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함께 청와대가 국사편찬위원회의 업무인 집필진 관리까지 간섭하고 있다는 논란도 제기됐다. 교과서 대표 집필진으로 선정된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는 전날 오후 취재진과 만나 “청와대에서 (기자회견 참석 요청)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또 최 교수가 기자회견 참석을 만류하는 제자들과 함께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 현정택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술을 마셨어도 (기자회견에) 나와줬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전화를 걸어왔다고 <노컷뉴스>가 보도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현정택 수석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최 교수와는 잘 아는 사이이고 제자들뿐만 아니라 기자들도 집에 몰려갔다는 얘기가 있어서 걱정이 돼서 전화한 것뿐”이라고 밝혔다.
최혜정 현소은 기자 idun@hani.co.kr
이슈국정교과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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