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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아베 비판 자제…대일 외교 ‘방향’ 트나

등록 2015-08-16 20:04수정 2015-08-16 21:38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광복 70주년 중앙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광복 70주년 중앙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뉴스분석 광복 70년 8·15경축사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5일 광복 70주년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 정부를 향해 “비록 어려움이 많이 남아 있으나 이제 올바른 역사인식을 토대로 새로운 미래로 함께 나아가야 할 때”라고 밝혔다. 역사 문제와 경제·안보 문제를 분리한다는 ‘투트랙 전략’을 재확인한 셈이다. 한-일 관계의 정상화 없이는 올가을부터 본격화할 동북아 다자 외교전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절박함’과 함께, 집권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구체적인 외교 성과를 내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아베 담화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반감이 상당한데도 박 대통령이 아베에 대한 비판을 최대한 자제하거나 “아쉽다”는 정도로 표현하는 등 국민 정서와는 상당한 온도차를 나타냈다.

“아베담화 아쉬운 부분 있지만
역대내각 입장 계승 주목” 밝혀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반응

강경론 치닫다 성과없이 기조변화
‘미숙한 외교’ 지적도 나와
야 “일본에 면죄부 줄 우려”

박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에서 “(전날 발표된) 아베 총리의 전후 70주년 담화는 우리로서는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가 아시아의 여러 나라 국민들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준 점과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한 사죄와 반성을 근간으로 한 역대 내각의 입장이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국제사회에 밝힌 점을 주목한다”는 평가를 내놨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아베 담화를 앞두고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 등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확실히 계승해야 한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비록 아베 담화가 기존 내각의 담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한다고 밝힌 부분을 의미있게 평가한 것이다. 아베 담화 발표 직후 국내에서 “식민 지배에 대한 사과는 언급되지 않았다”거나 “과거형 사죄에 그쳤다”는 비판이 제기됐는데도, 박 대통령의 대일 기조는 한결 누그러진 것이다. 그동안 박 대통령은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는 것”(2013년 3·1절 기념사)이라고 하는 등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교과서 왜곡 등을 들어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직시를 일본에 강하게 요구해왔다.

박 대통령은 특히 일본 과거사 문제의 핵심으로 제기했던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는 조속히 합당하게 해결하기를 바란다”는 정도로만 언급했다. 박근혜 정부는 그동안 위안부 문제를 다루면서 일본 쪽에 ‘성의있는 조처를 갖고 오라’고 요구할 뿐 구체적인 제안을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 6월 박 대통령은 <워싱턴 포스트> 인터뷰에서 “위안부 문제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협상이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했지만, 일본 쪽에선 “구체적인 진전은 없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돌아와 혼란이 일어난 일도 있었다.

이런 탓에 박 대통령이 애초부터 진정한 해결 의지 없이 정치적 목적으로 대일 과거사 문제를 이용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임기 반환점을 도는 현시점까지 정상회담을 거부할 정도로 강경하게 나섰다가, ‘대화 없는 해결이 가능한가’라는 비판 속에 조금씩 빗장을 열어가고 있는 태도는 미숙했다는 비판도 있다. 애초부터 진정성이 있었다면 권위있는 대화 채널을 닫는 것은 무리했다는 뜻이다. 박 대통령의 이번 경축사가 대일외교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된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우호적’ 태도는 과거사 문제로 인해 일본과의 외교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동북아 외교관계에서 고립되고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박근혜 정부가 일본에 대해 더 취할 수 있는 조처가 남아 있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특히 부상하는 중국과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한-미-일 ‘삼각 동맹’ 구상, 그리고 지난해 말부터 가시화된 중-일 접근에 따른 외교적 고립 우려 등 외부 구조적 요인 탓에 외교적 수단은 임기 초보다 훨씬 제한적이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아베 담화의 내용이나 기조는 우리에게 상당히 실망스러운 내용이고 반격의 소재도 많은데, 박 대통령의 경축사는 상당히 절제가 되어 있다”며 “대일관계 개선 의지가 녹아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도 “박 대통령이 임기 후반기에 들어섰지만 남북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외교 성과도 마땅치 않은 등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일본과의 정상회담을 위한 밑자락을 깐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공식화된 박 대통령의 9월 중국 방문에서 박 대통령이 한-중-일 정상회담 등 한-일 관계 개선의 모멘텀을 준비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박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에서 북한을 향해 “북한은 도발과 위협으로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미몽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강력히 비판하며서도, “진정한 광복은 민족의 통일을 통해 비로소 완성될 것”이라며 연내 남북이산가족 명단 교환 실현 등을 북한에 제안했다.

박 대통령의 경축사를 두고 정치권은 엇갈린 평가를 내놓았다. 유은혜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은 논평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대한민국의 번영을 위한 큰 틀의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통상적인 수준의 경축사에 그쳐 매우 실망스럽다”며 “(아베 담화에 대해) 일본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상황인데, 일본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비판했다. 반면, 이장우 새누리당 대변인은 “박 대통령의 경축사에는 매우 적절한 대국민, 대일본, 대북한 메시지가 담겼다. 매우 절제되고 강력한 메시지를 담은 매우 훌륭한 경축사였다”고 평가했다.

최혜정 김외현 이세영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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