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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서 심판해달라”…박 대통령, 국회에 선전포고

등록 2015-06-25 20:02수정 2015-06-26 11:43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회와 여야를 비판하며 굳은 표정으로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회와 여야를 비판하며 굳은 표정으로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뉴스분석]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강행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국회법 개정안의 재의를 요구하는 거부권을 행사했다. 박 대통령은 이에 그치지 않고,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회와 여야를 싸잡아 비난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메르스 사태 부실대응에 대한 유감 표명이나 사과는 없었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인해 야당이 국회 일정 중단을 선언하고, 새누리당은 재의 여부와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를 놓고 의견이 갈라지는 등 여야 관계, 당·청 관계, 여당 내분 등 정국 전반이 혼란과 갈등 국면으로 빨려 들어갔다.

박 대통령은 약 16분 정도 이어진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앞부분에 메르스 관련 정부 대응을 짧게 주문한 뒤, 나머지 12분을 국회와 여야 비판으로 모두 채웠다. 굳은 표정으로 국회법 개정안을 거부하는 이유를 설명했고, 이어 격앙된 목소리로 정치권과 여당을 차례로 비판하며 “선거에서 심판해달라”고까지 말할 정도로 날을 세웠다. 정치권에서는 예상을 뛰어넘는 거친 발언 수위로 볼 때, 박 대통령이 국회법 거부권 행사를 메르스 정국 돌파를 위한 또다른 계기로 삼으려 한 것 아니냐는 분석마저 나온다.

박 대통령은 우선 국회법 개정안과 관련해 “행정업무마저 마비시키는 것은 국가의 위기를 자초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며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해, 과거 정부에서도 통과시키지 못한 개정안을 다시 시도하는 저의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국회가 행정입법의 수정 변경을 강제할 수 있는지에 대해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도 해석이 통일되지 못한 채 정부로 이송된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충분한 검토 없이 서둘러 여야가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정치가 국민 이용하고 현혹…”
16분 중 12분 격앙속 비난 발언
유승민 직접 언급 ‘배신자’ 낙인도

선거·심판 강조 지지층 결집 호소
‘메르스 위기’ 국면전환용 분석

박 대통령의 비판은 국회법 개정안에 머물지 않고, “정치가 국민들을 이용하고 현혹해서는 안 된다”며 작심한 듯 대국회 선전포고를 했다. 그는 “늘상 정치권에서는 언제나 정부의 책임만을 묻고 있고, 정부와 정부정책에 대해 끊임없는 갈등과 반목, 비판만을 거듭해 왔다”며 “일자리 법안들과 경제 살리기 법안들이 여전히 국회에 3년째 발이 묶여 있다. 정치권에서 민생 법안이 아닌 정치적 이해관계에 묶인 것들부터 서둘러 해결하는 걸 보고 비통한 마음마저 든다”고 말했다. 또 “국회가 꼭 필요한 법안을 당리당략으로 묶어놓고 있으면서 본인들이 추구하는 당략적인 것을 빅딜을 하고 통과시키는 난센스적인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하는 등 그동안 묵은 감정을 토해내듯 비판했다. 그러면서 스스로에 대해서는 “앞으로 저는 대통령으로서 국민들이 저에게 준 권한과 의무를 국가를 바로세우고 국민을 위한 길에만 쓸 것”이라며 정치권과 선을 그었다.

박근혜 대통령 국무회의 발언
박근혜 대통령 국무회의 발언
박 대통령의 이런 강공은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 여론을 한껏 활용해, 메르스 사태 등으로 주춤했던 국정 장악력을 되찾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임기 중반 이후 정국의 무게 추가 국회와 여당으로 쏠리며 조기 레임덕을 맞는 상황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국회가 아닌 직접 국민을 상대하는 ‘나홀로 정치’를 선언한 것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여당에 대한 ‘충격과 압박 요법’도 썼다. 박 대통령은 회의에서 “여당 원내사령탑도 정부·여당의 경제살리기에 어떤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 가는 부분”이라며 “민의를 대신하고 국민들을 대변해야지, 자기의 정치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유 원내대표를 직접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는 “저도 결국 당과 후보를 지원하고 다녔지만 돌아온 것은 정치적, 도덕적 공허함”이라며 배신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자신에게 각을 세웠던 유승민 원내대표를 공개적으로 ‘배신자’로 낙인찍은 것이다.

박 대통령은 나아가 내년 총선을 언급하며 “배신하지 말라”고 여권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그가 새누리당을 향해 “오로지 선거에서만 이기겠다는 생각으로 신의를 저버리고 국민의 삶을 볼모로 이익을 챙기려는 구태정치는 이제 끝을 내야 한다”고 주문한 대목에선 새누리당을 보는 박 대통령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이 몇 차례나 ‘선거’와 ‘심판’을 거듭 강조한 것도, 여전히 탄탄한 자신의 지지세력이 있다는 점을 여권에 환기하는 동시에 지지층을 향해 ‘어려움에 처한 나를 구해달라’고 호소하며 결집을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메르스 사태 이후 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지지율이 하락하는 등 위기에 몰린 상태이지만, 여전히 자신의 지지층은 확고하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선거를 수단으로 삼아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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